방사능 위험에 분노한 엄마들, 탈핵 대중화 운동 나서
원전 반대하는 일본의 ‘100만인 어머니 운동’과 연대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저희를 지켜주신 것처럼 저희도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지난 7일 정설경(43·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 한편에 마련된 단상에 올라 이렇게 소리쳤다. 정씨의 외침은 그곳에 아이 손을 잡고 참석한 또 다른 ‘어머니’들의 소망이자, 다짐이었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위험에 분노한 엄마들이 이제는 ‘탈핵’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손을 잡고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세상을 아끼는 사람들의 연대(이하 미래연대)’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지난 7일 일요일 우비를 입고 밀양에서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라고 쓴 손 팻말을 들고 서울광장에 모였다. 밀양에 들어설 765㎸ 초고압 송전탑 문제를 비롯해 원전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를 주제로 열린 ‘우리가 밀양이다’ 문화제 행사에서다.
이날 행사의 중심은 밀양 주민이었지만 그들이 유일한 주인공은 아니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 난생 처음 자전거 페달을 돌려 직접 전기를 만든 초등학생, 학교 친구들과 함께 직접 기른 채소를 파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또 다른 주인공들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또는 아이를 품에 안고 광장에 나온 엄마, 아빠, 할머니, 삼촌, 이모들이 이날 모임을 주최한 이들로,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세상을 아끼는 사람들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하자센터, 여성환경연대, 아이쿱생협, 차일드세이브,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또하나의문화, 밀양대책위, 성대골마을, 성미산마을, 대안교육연대 등 다양한 섹터의 시민단체와 사진가, 주부, 학생 등 개인들로 이뤄졌다.
세 아이와 함께 온 최경숙(40·서울 마포구 성산동)씨는 “후쿠시마 사고 후 탈핵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후쿠시마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며 “원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핵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행사 주최자 중 한 명인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우리 연대는 ‘탈핵’에 공감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모인 느슨한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연대는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인 셈이다.
같은 날 일본에서도 총리관저 앞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시위가 있었다. 시위는 일본이 핵 없는 사회로 나아갈 것을 호소하는 ‘100만인의 어머니 운동’ 참여자들이 주축이 됐다. 100만인의 어머니 운동은 도쿄에 살던 사진작가 가메야마 노노코씨가 후쿠시마 사고 후 후쿠오카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이들과 만나면서 시작됐다. 탈핵을 소망하는 어머니와 아이 100쌍을 사진으로 담은 ‘100인의 어머니’ 사진집을 펴냈고, 북 콘서트와 강연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100만인의 어머니’들의 탈핵운동이 점화됐다. 최근에는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원전이 일본의 중요한 기술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거기에 쓰는 돈의 일부를 새로운 에너지 개발에 사용해 청정에너지를 외국에 판다면 더 좋을 것”이라며 원전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일본의 100만인의 어머니 운동은 미래연대 활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미래연대도 ‘100인의 어머니’ 사진 촬영을 첫 활동으로 잡았다. 사진작가들은 행사에서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촬영 동의서를 받으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사진 작업을 총괄하는 사진작가 양철모(36)씨는 “우리가 말하는 어머니는 사회적 모성을 가리킨다”며 “지역 사진작가들과 함께 모성을 담은 사진으로 핵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날 현장에는 취지에 공감하는 단체들이 마련한 부스에서 다양한 행사도 진행됐다. 더불어가는배움터길은 자전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자전거발전기 체험 행사를 열었고, 아이쿱서울생협은 밀양지킴이 버튼 만들기 체험 행사를 마련했다. 여성환경연대는 손수건에 밀양을 향한 메시지를 적는 행사를 열었고, 성대골발전소는 햇볕에너지로 만든 냉커피, 삶은 달걀, 솜사탕을 판매했다.
가족과 함께 행사에 참가한 이충현(12·대전 서구 군산동)군은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원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원전에 찬성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엄마와 함께 온 임세현(11·서울 마포구 성산동)양도 “전력 소비를 줄인다면, 더 이상의 원전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밀양 주민 김영자(56)씨는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걷는 것조차 힘든 할머니들이 농사일을 제쳐두고 왜 송전탑 공사를 하는 산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갔는지 생각해달라”며 “다 같이 힘을 모으면 못 해낼 일이 없다”고 연대를 당부했다.
미래연대는 앞으로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시민의 참여를 위해 홈페이지(http://100mothers.kr)와 페이스북 페이지(www.facebook.com/100motherskr)를 소통 창구로 활용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