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 민음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열풍이 거세다. 정식 출간을 앞두고 인터넷 서점들이 예약 판매를 실시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출간일인 7월 1일에는 광화문의 한 대형 서점에 새벽 5시부터 줄을 서는 근래 보기 드문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정유정의 ‘28’과 조정래의 ‘정글만리’,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등이 맞붙는 여름 서점가에서 독자들은 이래저래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에 바쁠지도 모른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내용은 이렇다. 나고야 교외 공립고등학교에서 우애를 다진 다자키 쓰쿠루를 비롯한 5명의 친구들은 죽고 못 사는 사이다. 하지만 쓰쿠루가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어느 날, 네 명의 친구로부터 갑작스럽게 절교를 당한다. 쓰쿠루는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고, 오직 죽음만 생각하며 몇 개월을 보낸다. 고독하고 가혹한 시간을 견뎌냈지만 쓰쿠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고, 그렇게 16년의 세월이 흘러버린다. 

서른여섯 살이 된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 회사에서 역을 설계하고 보수하는 일을 하는데, 어느 날 두 살 연상의 기모토 사라와 사랑에 빠진다. 사라는 이내 완전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쓰쿠루의 마음의 상처를 보게 되고, 친구들을 만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순례 여행을 제안한다. 쓰쿠루는 옛 친구들과 다시 조우하며 자신이 버려진 이유를 알게 되고, 서서히 삶의 새로운 활력과 평안을 얻게 된다.    

‘색채가 없는…’은 주인공 이름이 제목에 등장할 만큼 쓰쿠루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내내 몇몇 여성으로 하여금 반전을 거듭한다. 쓰쿠루의 네 친구 중 하나로 ‘시로’로 불리는 시라네 유즈키는 쓰쿠르의 삶을 헝클어뜨리는 장본인이다. 시로는 도쿄로 떠난 쓰쿠루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친구에게 ‘어떤’ 거짓말을 해서 쓰쿠루가 완전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 그 거짓말의 파장은 엄청나서 다자키 쓰쿠루의 삶은 한동안, 아니 이후의 삶도 외톨이에 가깝게 된다. 또 시로는 쓰쿠루의 음란한 꿈에 항상 등장하면서 소소한 일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시로가 쓰쿠루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면 기모토 사라는 쓰쿠루를 온전한 한 인격으로 올려놓는 여성이다. 사라는 드문드문 등장하지만 존재감만큼은 단연 돋보인다. 사라는 적극적이고 예민한 여성이다. 가장 친밀해야 할 사랑의 순간에 마치 두 사람이 분리된 듯한 감정을 겪은 후 사라는 쓰쿠루에게 상처가 있음을 간파한다. 결국 사라는 적극적으로 상처를 치유할 것을 쓰쿠루에게 권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져 쓰쿠루의 네 친구 정보를 전해주는 재주 많고 당찬 여성이기도 하다. 

‘색채가 없는…’을 읽으며, 상처를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쓰쿠루의 용기에 감동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쓰쿠루의 삶을 새롭게 열어가는 여성의 힘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됐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것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어둡고 불안한 길을 걷는 우리 모두를 일으켜주는 힘, 그것은 언제나 여성에게서 나온다.

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