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니” 아니 “엄마” 하고 불러 보면 금세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전화 한 통 넣지 않으면서, 모처럼 만나도 살가운 말 한 마디 전해드리지 않으면서도 돌아앉아 “엄마” 하고 부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상 모든 엄마는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아마도 그런 존재 아니겠는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에게도 엄마는 생각할 때마다 가슴 절절한 존재였을 것이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바로 그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열 살 무렵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 생텍쥐페리가 어머니에게 보낸 103통의 편지와 가족에게 보낸 7편의 편지를 어머니인 마리 드 생텍쥐페리가 엮은 책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어린 왕자’와 ‘인간의 대지’ 등을 쓰기까지 자양분이 됐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때론 절절하게, 때론 유쾌하게 펼쳐진다.
거의 모든 편지가 “사랑하는 엄마”로 시작하는데, 생루이고등학교 시절 보낸 1917년의 어느 날의 편지에는 세상 모든 아들들이 마음으로는 간직하고 있으나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하는 절절한 고백을 담고 있다.
“엄마가 저를 위해 해주신 모든 것에 대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툭하면 심통을 부린다고 제가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제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엄마.”
그런가 하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안위를 걱정하는 자상한 아들도 등장한다.
“저한테는 엄마의 다정함이 끝없이 필요해요. 사랑하는 엄마, 내 사랑 엄마. 무엇 때문에 이 지상에서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위협을 받아야만 하는 걸까요?”
생텍쥐페리의 엄마 마리 드 생텍쥐페리는 그 자신이 프랑스 미술전에서 상을 받은 화가이자 작가였고,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다섯 남매를 자신만의 교육 방침과 각별한 사랑으로 키워낸 엄마였다. 당연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문학성은 엄마 마리의 유산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은 각별했다. 생텍쥐페리가 1944년 7월 31일, 독일군 정보 수집을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의 수신자도 엄마 마리였다. 그 편지는 1년 후에나 마리에게 전해지는데, 그때까지 아들의 실종과 죽음을 믿지 않았던 그는 그제야 오열을 터뜨렸다고 한다. 편지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엄마, 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엄마를 안아드리는 것처럼 안아주세요.”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에서 지각을 갖춘 작가로 성장하는 생텍쥐페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1924년 6월 파리에서 보낸 그의 편지에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구절이 등장한다. “제 소설은 페이지를 더해갈수록 점점 원숙해져가고 있습니다. 다음 달 초 정도면 엄마한테 가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대단히 독창적인데, 가장 잘된 대목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조금 전에 마쳤습니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노라면, 아들의 편지를 손에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엄마 마리의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숭고함을 찬양했던 작가의 섬세하고 독창적인 심성은 결국 그가 평생 믿고 의지했던 엄마에게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편지 한 통, 아니 전화라도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 수화기 너머의 반가운 음성이 벌써부터 마음을 평안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