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행정’ 비난… 주민 반발에 사업 난항
“대학생들이 왜 대학 없는 목동에서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정부가 지도 보고 빈 땅 찍은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서울 양천구 목동 주민 B씨)
“저소득 서민들의 행복을 위해 기존 지역 주민들의 행복을 박탈하는 것이 불행주택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서울 노원구 공릉 주민 P씨)
박근혜정부의 행복주택 사업이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행복주택이 아닌 ‘불행주택’이나 다름없다며 공청회 도중 퇴장하는 등 시작 단계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행복주택이란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사업으로 올해 1만 가구를 시작으로 2017년까지 2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주택 크기는 기존 영구임대주택과 비슷하지만 시세보다 최대 70% 싸게 공급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역 일대와 서울의 공릉동, 가좌동, 오류동 등 철도용지 4곳과 목동, 송파구 잠실‧가락동 등 하천변 유수지 3곳(약 49만㎡)을 행복주택 시범지구로 지정했다. 정부는 이들 지역에 임대주택 외 사회적기업 등을 유치해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고 도심 재생과 연계해 친환경 복합 주거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국토부가 선정한 7개 시범사업 지구 중 오류동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6개 지구에서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원구 주민들은 전국에서 임대주택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며 더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은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분했다는 지구 선정 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경기 안양도 마찬가지다. 12일 안양 국토연구원에서 열린 공청회는 시위로 아수라장이 됐다.
반발은 특히 목동 부근에서 거세다. 목동 주민들은 주로 교통체증과 인구 과밀화를 들어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부지 내 빗물펌프장 등 기반시설이 이전할 마땅한 땅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목동은 시범지구 중 건설 호수가 2800호로 가장 많다.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서울 양천갑)은 성명을 통해 국토부의 행태를 꼬집었다. 길 의원은 “국토부가 예정지가 선정됐으니 공청회를 열어 여론을 수렴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국민행복시대, 소통과 화합을 부르짖는 정부가 취할 태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는 “국토부는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이 들어오기 때문에 학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막연한 추측일 뿐”이라며 “신혼부부의 경우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한 대책은 언급도 없다”고 지적했다.
신정호 양천구 행복주택비상대책위원장은 “목동은 유수지 인근 인구밀도가 전국 최고”라며 “행복주택이 건립되면 학급 인원 과밀화에 이어 교통 정체가 지옥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주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치자 민심 달래기에 급급한 상태다. 17일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부와 협의를 거쳐 철도부지 등 공공시설 부지에 건설되는 행복주택에 용적률, 건폐율, 학교 등에 대한 특례를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 개정을 통해 원만한 사업 추진을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여전히 ‘불통 정부’ ‘졸속행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5년간 진행하는 국가사업을 6개월 만에 추진해서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사업부 관계자는 “행복주택이 들어서는 곳에는 공공시설이 유지되고 야외 공원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 등이 들어서기 때문에 행복주택 사업자가 지역사회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장점에 비해 문제점이 적지 않다.
당장 재원 마련도 시급하다. 지난해 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빚은 138조원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정부 당시 대형 건설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LH는 최근 2년간 8조8512억원의 이자가 발생해 하루 평균 121억원의 금융부채 이자를 내고 있다. 공기업 부채는 국가 재정에 치명적일 뿐더러 이는 곧 국민 혈세로 이어진다. LH는 보통 택지개발지구와 달리 행복주택은 “땅값이 들어가지 않고 건축비만 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행복주택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공기업이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행복주택과 비슷한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을 공급하는 건설업체들의 타격도 예상된다. 비슷한 물량이 시장에 공급되면 오피스텔을 포함한 수익형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오피스텔의 공급이 늘어나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명박정부의 보금자리주택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보금자리주택이란 이명박정부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중소형 주택 70만 가구, 임대주택 80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주택정책이었지만 당초 계획과는 달리 입주 완료된 아파트는 1만 가구에 불과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행복주택의 성공을 위해선 ‘소통’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 학부 교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고민해야 한다. 대규모 물량 위주에서 벗어나 임대물량을 정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동산 경기, 건설 경기에 맞춰 살펴보면서 지역의 수요를 파악하고 순차적으로 꼭 필요한 지역과 주택 수요가 있는 부분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