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6월 4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핵심 국정 운영 기조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한반도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을 제시했다. 또 창조경제와 경제 민주화를 통해 경제 부흥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근혜 정부 100일 평가는 다양한 차원에서 이뤄지겠지만 아직까지 기대한 만큼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사 실패, 정부조직법 개편 갈등, 북한의 지속적 도발 위협,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등이 불거지면서 집권 초기부터 크게 흔들렸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다소 빛이 바랬지만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실제로 윤창중 파문이 확산되던 시기에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6%가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일감 몰아주기를 멀리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 정부 100일을 평가해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10만 명에서 50만 명의 여성 인재를 육성하고,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통한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초기 내각과 청와대 비서관 임명에서 여성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는 없었다. 최근 국무조정실은 향후 5년간 추진해나갈 140대 국정 과제를 확정했다. 그런데 정책 우선순위가 높고 빠른 추진이 필요한 40개 집중 관리 과제 중 여성과 직결된 것은 ‘여성 경제활동 확대 및 양성평등 확산’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 등 단 2개에 불과했다. 현 정부에서 여성정책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있다는 방증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고용률 70% 달성’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간제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여성인력이 많이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또 “시간제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로 여겨지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용의 질이나 노동환경 개선은 언급하지 않은 채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나쁜 인식을 전환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진정 원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6일 정치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 기초단위 선거에서 정당공천 폐지와 관련된 다수의 법안들이 제출됐다. 하지만 정당 공천이 폐지되면 조직력이 있는 전·현직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이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리게 된다. 후보 난립으로 낮은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직과 자금에서 열세인 여성은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된다. 더구나 지역구 정당 공천이 폐지되면 비례대표도 전략공천도 자동 폐지되기 때문에 여성들의 정치참여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여성들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여성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이 양산된다면 현 정부는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위상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해서 고용, 복지, 안전, 출산 등 여성 문제를 종합적이고 협업적 차원에서 총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또 대통령이 여성단체 인사들과 수시로 만나 현안을 토론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여성 대통령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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