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학회 국제학술 심포지엄
지구적 맥락에서의 ‘아름다움’과 기술적 개입 논의
홍콩, 태국, 아르헨티나, 호주 등 6개국 학자 참여
“‘한국 스타일’ 성형수술은 강남만이 아닌 ‘동네' 성형외과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성형산업에 대한 이러한 분석이 제시돼 흥미롭다. 충북여성발전센터 태희원 박사는 5월 24일 충북 오송 생명과학단지 지원센터 중앙후생관에서 열린 한국여성학회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한국에서 성형수술은 ‘한국 성형수술의 중심지’인 서울 강남의 뷰티 벨트에서만 집중적으로 행해지기보다 지방 도시의 번화가나 쇼핑몰에 위치한 성형외과 혹은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가정의학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동네 성형외과’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진다”고 분석했다.
태희원 박사는 이날 발표에서 자신이 방문했던 지방 소도시의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한 의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성형 시술’에 대해 들려줬다. 오전 10시 30분쯤 제법 이른 시간에 방문했음에도 병원 대기실에는 ‘시술’을 받으려는 여성 2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실 벽에는 보톡스와 필러, 피부·비만 관리용 레이저 기기 등 미용 관련 제품을 소개하는 광고판과 전단지, 가격표 등이 붙어 있었다. 이 병원에서는 작은 주사실에서 소독약, 마취 크림을 바른 후 피부과보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의 보톡스를 주입해준다고 했다. ‘보톡스 이벤트’를 하고 있는 한 성형외과에서는 시술받을 사람이 너무 많아 ‘진동벨’까지 들고 대기할 정도라고 했다. 태 박사는 “동네 성형외과의 좁은 대기실, 진동벨을 들고 대기하는 환자들의 풍경은 한국 스타일 성형수술 실천을 공식적인 통계 수치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구화와 기술 개입 시대의 여성성 구성’이라는 주제로 6개국 학자들이 모여 각 나라의 아름다움의 개념과 성형수술, 뷰티산업에 이르기까지 논의가 이뤄진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태희원 박사뿐만 아니라 홍콩중문대 린 나카노 박사와 언어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의 짜라이 싱하꼬윈따 박사가 홍콩과 태국에서의 ‘아름다움’의 개념에 대해 발표했다.
린 나카노 박사는 “유럽과 일본의 패션이 홍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홍콩인들에게 패션과 뷰티는 위계화돼 있다”고 말했다. 나카노 박사에 따르면 홍콩에서는 피부색에 따라 아름다움의 등급을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가장 피부가 하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식되고,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은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못하고 우아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동북아 여성들이 동남아 여성들에 비해 아름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러한 미적인 위계 속에서 홍콩 젊은이들은 일본의 패션을 자신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중국은 열등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나카노 박사는 홍콩 젊은이들의 이러한 경향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취사선택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창조하는 데 참고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짜라이 싱하꼬윈따 박사는 “태국에서 아름다움의 개념이 과거에는 건강한 노란 피부와 검은 머리로 대표됐는데 오늘날에는 뽀얀 피부와 슬림한 몸매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태국 미디어에서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이긴다’ ‘당신의 몸매 때문에 남성이 바뀐다’ 등의 언설을 광고하며 여성들이 인생의 성공을 위해 외모를 개선하라는 메시지를 퍼뜨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여성학회장인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는 “지구화 시대에 거의 모든 사회에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각각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꺼번에 이야기를 해야만 보편적 이슈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으며, 어떻게 상호 참조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보인다”고 심포지엄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어떤 성형수술이 사람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열어주고, 어떤 수술이 철저하게 자본에 포섭돼 있는 수술인지 등의 국면과 맥락을 드러내야 한다”며 “이러한 이야기와 담론의 경합으로 새로운 공간들이 열린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뉴욕주립대 바바라 서튼 박사와 영국 코번트리대 김종미 박사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젠더 및 행위성과 여성적 아름다움’을 주제로, 호주 매쿼리대 니키 설리번 박사와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루인씨가 ‘아름다움, 여성성 혹은 남성성의 구성과 기술적 개입’을 주제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