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슬리퍼, 샤워커튼 등도 PVC 재질
유해제품 시장 진입 막는 정부 규제 필요

며칠 전 신문에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어린이 용품 254개의 유해성 여부를 검사했더니, 전체 용품 중 35%에서 중금속과 폴리염화비닐(PVC) 등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어린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하얀 실내화나 지우개, 멜로디언·실로폰 등 음악교구나 줄넘기 줄 등 64개에서 PVC가 검출됐다고 한다. 조사에 포함된 학용품뿐 아니라 목욕용 노란 고무오리 인형, 팔다리가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인형, 공룡인형 세트 등 많은 장난감도 PVC 재질이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물건에서도 PVC 재질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내용으로 널리 애용되며 ‘국민 슬리퍼’라고 불리는 흰색과 남색 줄의 슬리퍼, 요즘 유행하는 건식 스타일 목욕탕을 지향하며 새로 설치한 샤워커튼, 합성가죽으로 만든 소파, 명품 브랜드의 PVC 가방이나 지갑도 마찬가지다.

PVC가 왜 문제이고,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흔히 ‘비닐’이라 불리는 PVC는 다른 플라스틱에 비해 압도적으로 경제성이 좋아서 플라스틱의 황제라 불리지만, 독성 또한 제일 강하다. 원래 PVC는 딱딱하고 부러지기 쉬운 재질이어서 부드럽게 만들려고 가소제로 프탈레이트를 넣는다. 실제로 프탈레이트 생산량의 대다수(60%)가 비닐 가소제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화장품, 방향제 등 생활용품에 ‘향료’라는 이름으로 들어간다.

프탈레이트 가소제는 실내 공기를 오염시키고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 함량을 높인다. 게다가 어린아이들은 장난감을 입에 넣거나 빨기도 하여 프탈레이트에 직접 노출되기도 한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성조숙증에 걸린 소녀들이 증가하는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에서는 이들의 혈청 샘플에서 높은 농도의 프탈레이트가 발견되기도 했다. 프탈레이트는 한국 여성 중 30명당 한 명이 걸리는 유방암의 발병률을 높이기도 한다. 또한 생산과정에서 염화비닐 공장 노동자들에게 간암, 뇌종양, 폐암, 림프종, 백혈병, 간경화 등의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폐기 단계는 어떨까. PVC가 매립장으로 가면 땅으로 물로, 공기로 독성물질이 스며들어 주변 식수와 마을을 위협한다. 매립도 위험하지만 PVC를 태우는 것은 더 해롭다. PVC를 태우면 초강력 독성물질인 다이옥신과 산성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PVC라는 물질의 생애주기는 이렇게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

요즘은 우주의 네 가지 기본적인 구성 단위가 불과 물과 돌, 그리고 비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플라스틱이 만연하다. 플라스틱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플라스틱이라고 모두 독성이 똑같은 건 아니지만, PVC는 생산-유통-폐기 과정 모두에서 문제가 많다. 집안에 있는 모든 PVC 제품을 한꺼번에 버릴 수는 없지만 새롭게 구입하지 않을 수는 있다. 물건을 살 때, 재질 표시를 살펴보고 PVC라고 적힌 것은 가능한 한 구매하지 않는 것이 한 방법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플라스틱은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페트(PET)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 두 개를 소개한다. 여성환경연대도 참여하고 있는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홈페이지(www.nocancer.kr) 내 ‘PVC 없는 학교 만들기’ 난에서 PVC 제품을 확인할 수 있으며, 초등학교와 학부모들에게 교육과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운영하는 ‘세이프티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리콜 제품 리스트를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PVC 제품을 구매 단계에서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표시가 돼 있지 않거나 허위 표시된 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확인해도 특히 장난감의 경우는 아이들이 울며불며 떼쓰면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전 국민이 혜택을 받는 쉬운 방법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PVC 등 유해제품은 아예 시장에 나오지 못하게 정부가 나서서 미리 조사하고 규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정보 접근권이나 구매력, 정책 결정력이 취약한 그룹에도 환경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됐을 때, 주변의 남성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면 좋겠다. 사람이나 문화유산은 알 때 사랑하게 되지만, 유해물질은 아는 사람이 많아져야 더 많이 피할 수 있고 또 가족 돌봄이나 건강 챙기기 역할을 남녀 모두 나누는 조화로운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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