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 훈장 받은 문영희 디자이너, "두 문화권 사이 조화와 새로움 고민"
프랑스 정부 훈장 받은 문영희 디자이너, "두 문화권 사이 조화와 새로움 고민"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3.05.22 14:11
  • 수정 2013-05-2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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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부터 파리 시장 개척… 18년간 거르지 않고 프레타포르테 참가 진기록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여덟 살 무렵부터 뜨개질을 술술 하고,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 실린 옷본만을 보고 집 다락방에서 찾아낸 천으로 플레어스커트를 딱 만들어냈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용돈을 털어 복장학원에 다니며 어른들 어깨 너머로 배운 옷 만들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패션의 메카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 중인 패션 디자이너 문영희(사진)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또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오랜 시간 차곡차곡 준비할 수 있었던 사람이니까.

최근 주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로훈장 기사장(Chevalier de l`Ordre National du Merite)을 수훈해 화제를 모은 그를 서울 반포 서래마을 입구에 위치한 한국 매장 ‘이마주 드 라 비’(Image de la Vie)에서 만났다. 프랑스 현지 법인 회사이자 숍은 파리 3구 마레 지구에 ‘MOON YOUNG HEE’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 비해 의외다. 프랑스 생활 25년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틈틈이 경매를 통해 구입한 루이 13~16세 때, 나폴레옹 1세 때의 가구와 티 세트 등 골동품들로 꽉 들어찬 매장 분위기가 이색적이다. 파워풀한 느낌의 워커와 전위적인 수트에 이르기까지 온통 블랙 색상 차림의 가냘픈 체구의 그는 “직역하자면 ‘문영희의 삶의 풍경’이라 할 수 있는데, 2008년 문을 연 이 매장에 내가 평생 좋아해온 오브제 콜렉션들이 다 있다”고 소개했다. “현지에서 프랑스 역사를 독학으로 파고들면서 유럽 최고의 문화는 프랑스의 엔티크라는 것을 깨닫고 매료됐다”며 “물론 내 작품에도 영감을 준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옷 자체에만 집착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옷 안에 문화와 스토리텔링을 넣고 싶어하는 대단한 야심가임을 짐작하게 했다.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에 끌려 파리 정착

프랑스의 국가공로훈장 기사장은 매우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술성은 물론 활동 범위와 내용, 공익성까지 꼼꼼히 따진다. 그 전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정도가 받았을 정도로 패션 디자이너에겐 좁은 문이기도 하다. 5월 7일 그에게 기사장을 수여한 제롬 파스키에 주한 프랑스 대사는 그를 ‘프랑스의 오랜 벗’으로 친근하게 지칭하며 “프랑스가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고 격찬했다. 그의 무엇이 프랑스인들을 그토록 매료시켰을까.

“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디자이너의 새로운 콜렉션엔 자신만의 철학관이 뚜렷해야 하며, 개인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항상 새롭고 아트적인 것, 그리고 트렌드 제시가 꼭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내 철칙이자 소신이다. 가끔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한복을 변형해 파리 패션가에 선보이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전통 패션을 부분별로 그대로 옮겨놓은 데 그치는 경우도 있다. 이질적인 데서 오는 호기심이면 한 번 보는 것으로 족하기에 한국적 패션에 대한 열기도 금방 꺼지게 마련이다. 한국과 프랑스, 두 문화가 조화롭게 융합돼 언제나 뭔가 조금 다른 것,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그의 막내아들은 엄마의 매장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매장 안까지 들어와 엄마를 포옹하며 엄마의 작품에 감탄하는 풍경을 보곤 “엄마가 살아온 길이 결국 저렇게 프랑스인들에게 존경받는 것을 보면 진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한 것을 그는 최고의 찬사로 여긴다(그는 1녀 2남을 두었는데 막내아들 김무홍씨는 영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단에서 교수 생활도 했으나 결국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 ‘무홍’이라는 독자적 브랜드를 개척 중이다). 그는 “남의 것 카피 안 하고, 자기표현을 충만히 하며 즐겨왔고, 여기에 창작자를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프랑스 특유의 풍토가 합쳐진 결과”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추상적 해석 이면엔 수많은 세월의 인고와 인내가 있었다.

그는 18년간 40여 회 가깝게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해왔다. 1990년대 초반 파리에 어느 정도 안착된 이래 상·하반기 연간 두 차례에 걸친 프레타포르테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결과다. 파리 현지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지만, 한국 패션계에선 일종의 기록이다. 때문에 그의 이번 수훈 소식을 듣고 대선배 노라 노 디자이너는 “우리가 파리 가서 하려다 너무 힘들어 도로 들어왔는데, 문 선생이 해냈어”라는 찬사를, 진태옥 디자이너는 “훌륭한 업적 이루어 보람”이라고 격려했다. 파리의 한 뮤지엄엔 그의 콜렉션 작품집과 함께 비디오, 시디 등이 비치돼 있다. 그는 언젠가는 자신의 작품이 뮤지엄에 비치돼 전시될 날을 꿈꾼다.

“1984년부터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파리 시장을 개척했다. 94년에 법인체를 만들어 바이어들을 위한 쇼를 열고 전시를 하면서 주문을 받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쉬운 일이란 없다. 현지 직원들을 관리하고, 노동청과의 문제가 잘 넘어가면 다음 시즌엔 세무서와 문제가 생기고, 이런 식으로 순탄치만은 않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에서 꾸준히 사업을 이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디자이너들이 파리로 몰려들지만, 얼마나 견디나 보자 식의 냉혹한 시선이 존재한다. 반면 전문 분야별로 다 세부 계약을 맺어 아웃 소싱을 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디자이너는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다. 여기에서처럼 디자이너가 경영 일선에도 나서서 회사를 세우고 마케팅과 홍보를 하는 등 총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라면 아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익 면에선 한국 시장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창작 시스템 면에선 파리가 유리하다.”

 

지난 3월 열린 2013 춘계 ‘서울패션위크’에 선보인 콜렉션 뉴 앙팡 테리블. 그 특유의 흑백 색상의 강렬한 대조가 시선을 끌었다.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지난 3월 열린 2013 춘계 ‘서울패션위크’에 선보인 콜렉션 '뉴 앙팡 테리블'. 그 특유의 흑백 색상의 강렬한 대조가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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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창작자의 영감 밑바탕은

다양하고 꾸준한 공부”

그는 창작열이 끊임없이 솟아나곤 한다는 행복한 고백을 한다.

“6개월 단위로 새 작품을 내고 뭔가 트렌드를 제시해야 하는 프레타포르테를 나 나름 재미있게 즐겼다. 재능이 풍부하고 건강관리만 잘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성취감이 크다. 쇼가 끝나면 금세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이 생각이 체인처럼 연결되곤 한다. 물론 쇼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죽고 싶다는 기분도 든다. 그럴 땐 가능한 한 많이 산보하고, 독서하고, 뮤지엄도 가고 여행도 하면서 내 작업과 좀 떨어져 거리를 두고 후련하게 지내려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 계기가 생기고 동기부여도 되면서 의욕도 다시 솟는다. 이렇게 강박관념을 떨쳐내다 보면 이런 것, 저런 것을 새로 표현하고 싶어지고, 이를 가봉으로 실현시켜 좋은 결과가 나오면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래도 천직인 듯싶다(웃음).”

그는 “영감은 때가 없다”고 말한다. “감성이 언제 많이 열려 흡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 가령 지난 3월 2013 F/W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선보여 한국적 전통미와 현대적이고 유럽적인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은 ‘뉴 앙팡 테리블(New Enfant Terrible)’ 콜렉션도 뜻밖의 순간 찾아온 영감의 결과물이다. 여기에 승마를 잘하는 친구 딸의 이미지가 겹쳐졌다. 젊은이 특유의 거침없고 발랄한 승마 분위기에서 뉴 앙팡 테리블의 이미지를 잡아냈다.”

그러나 자양분이 필요하다. 그는 “영감의 밑바탕은 다양하고 꾸준한 공부”라고 힘주어 말한다. 종합예술인 패션의 경우 이는 더 분명해진다. 파인아트(Fine Art), 앤티크, 문학과 역사 등 디자이너의 머릿속에 풍부한 재료가 들어 있을수록 콜렉션은 꽉 차 보이게 마련이라는 것. “어떤 콜렉션은 좀 비어 보이고, 어떤 콜렉션은 굉장히 함축돼 보이는 것,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라고 그는 반문한다. 그러면서 창작을 하는 사람일수록 어려서부터 긴 세월을 예술과 자연스럽게 접하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지난해 4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숍UUL에서 패션디자이너로서는 이례적으로 협업 작품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은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을 왕래하던 사업가 아버지와 서예에 조예가 깊고 패션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8남매 각자를 최고의 교육을 시키고 싶어 테니스부터 피아노까지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했던 그의 어머니는 그가 꼬마일 때부터 조선호텔에 가서 당시 유명 디자이너였던 조세핀 조에게서 양장을 맞춰 주곤 했다. 그때부터 그는 조세핀 조에게 장차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며 ‘선생님이 내게 뭐라도 심부름을 시켜주셨으면’ 하고 열망했다.

“엄마는 기품 있게 옷 입는 것을 중시하셨던 분이지만 정작 딸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반대했다. 너무 힘든 일이라는 이유에서. 그러나 유럽을 왕래하며 사업을 크게 했던 아버지는 상당히 트인 분으로 생각이 달랐다. 프랑스 출장길에 피에르카르댕 매장에서만 파는 최고급 원단이나 갖가지 길이와 재질의 장갑을 내게 사다 주시면서 ‘이것들 좀 잘 살펴보라’고 격려하시곤 했다. 일찍부터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창작하는 직업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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