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 핸드볼 배우지 않을래?”

전북 정읍초등학교 핸드볼 감독이었던 김권섭 선생님이었다. 운동회 릴레이 경주에서 상대 팀을 반 바퀴나 따라잡은 나를 잘 보셔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신 것이다.

나는 ‘쿨’하게 도망다녔다. 핸드볼은 경기 내내 땀을 뻘뻘 흘려가며 힘들게 뛰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또 당시 정읍시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에 나가 금상을 받을 정도로 미술에 소질이 있던 터라 선생님의 제의를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 ‘도망’을 갔지만 김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칠판에 ‘다음 날 아침 자습’을 쓰고 있는데 복도에서 나를 계속 기다리고 계셨다. 일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니 선생님은 기다리셨다는 듯 반 강제로 나를 운동장으로 데려가셨다. 핸드볼 공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결정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나는 핸드볼을 시작하게 됐다.

핸드볼에 대한 첫인상은 그야말로 ‘별로’였다. 언니들은 쉼 없이 뛰어다녔고, 옷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못하면 감독님께 호되게 혼나는 모습이 싫었다. 그런데 코트 안으로 들어가 언니들과 함께 연습경기를 해보곤 생각이 달라졌다. 땀을 흘리는 것도 좋았고, 게임 규칙과 기술에 대해 알게 되니 감독님한테 혼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볼을 잡아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에서 골로 연결시키는 순간의 기쁨이 컸다. 그렇게 나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핸드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힌 건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에게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면서부터다. 당시 4학년에 불과했지만 언니들에게 전혀 기죽지 않고 코트를 휘저었다. 1년 넘게 훈련한 언니들보다 잘할 때도 있었다. 계속 칭찬을 받다 보니 어린 마음에 기분이 좋았는지 핸드볼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부모님께 말했다.

“핸드볼 시켜주세요. 하고 싶어요.”

예상대로였다. 부모님은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며 학교에 쫓아오실 정도였다. 공부도 제법 잘해 학급에서는 부반장을 맡았고, 그림도 잘 그려 상을 휩쓰는 딸에게 언제 부상을 입을지 모르는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청개구리 본능인지 그럴수록 나는 핸드볼에 더 빠져들었다. 공부도 뒤지지 않았다. “운동하는 사람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나는 단숨에 선수 베스트 7에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팀 에이스 자리를 굳혔다.

팀 성적이 좋아지자 “오경이 잘한다”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고, 부모님도 그 소리를 들으셨는지 나를 응원해 주시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말보다는 행동과 결과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구나!” 

 

▲임오경 감독 약력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현재 한국여성스포츠회 이사, 대한핸드볼협회 상임이사, 평창동계올림픽 선수위원. 영화 우리들 생애 최고의 순간(2008, 감독 임순례)의 실제 인물로 유명하다.  

*'임오경의 우생순' 격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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