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김두식 전 검사, 대담 통해 비리 분석
국회 인사청문회 때마다 어김없이 크고 작은 비리로 낙마하는 인사들을 신물 나게 보곤 한다. 그 정도 학벌에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들이 그토록 쉽게 비리 허들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하는 생각은 대략 두 가지다. 우리 사회에선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면 일인자가 될 수 없고, 일인자가 되면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다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아리송한 유추 해석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수치상으론 그렇다. 지난해 말 국제투명성기구(TI) 발표에 따르면, 국가별 부패지수(CPI)에서 우리나라는 총 176개국 중 45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선 27위를 기록, 공정사회란 측면에선 낙제 점수를 면치 못했다.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 나와 주목된다. 저자 면면을 봐도 우리 사회 비리에 대해 얘기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인물들이다. 여성 첫 대법관인 김영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와 검사 출신의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공저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쌤앤파커스)가 그것이다.
김영란 교수는 일생 “소수자를 위한 법치주의”를 확대하고 실현해온 법관 출신으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시절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일명 김영란법)을 만든 당사자다. 김두식 교수는 최고의 엘리트 기득권층인 법조계 인사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파헤친 ‘불멸의 신성가족’의 저자다. 청탁이나 부패엔 지극히 냉담할 것 같은 저자들도 한국적 상황에선 이를 완전히 눈감을 수 없었음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부분에 가서는 비리의 문제가 개인 차원을 넘어 견고한 관습과 통념의 벽 안에서 공고한 구조를 갖추고 작동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김영란 교수는 초임 판사 시절 소액사건의 피고가 된 가까운 가족에게 면피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에 담당 판사에게 연락을 했다가 “판사로서 내 체면이 뭐냐 싶을 정도로 혼이 났고, 이 경험이 일생 약이 됐다”고 고백한다. 김두식 교수는 룸살롱에서 술 취한 동료 검사들이 “형, 이걸로 끝나는 거야?” 하고 투정 부리는 광경을 목도하곤 했다.
두 저자의 주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 하나는 댄 애리얼리가 쓴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인데, 요약하자면 화폐적 특성이 작은 대가와 대상일수록 부정행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주장이다. 가령 공무원이 현금 5만원은 선뜻 받기 힘들어도 상품권 5만원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한 예다. 저자들은 이것이 바로 “착한 사람일지라도 발을 조금만 젖게 하면 금방 온몸을 다 적시게 된다”는 것이 바로 “비리의 출발 지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 콜게이트대 교수가 분류한 4단계 부패 유형 중 한국은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등과 함께 ‘엘리트 카르텔’ 형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사회 상층부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부패의 전리품을 나눠 가지는 한편 현 질서를 유지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킨다는 것. 이 경우, 경제 발전과 국가 역량은 다소 높더라도 정치·경제는 엘리트에 의해 효과적으로 관리된다. 이 엘리트 카르텔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현실적 요인은 비생산적 국회, 비대한 정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법원과 정당 시스템 등이다.
김영란 교수는 “판사가 썩으면 우리 사회가 다 썩은 것”이라는 소신으로 판사를 비롯한 공직자들이 초심을 끝까지 유지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측면에서 반부패 정책의 청사진을 그려간다. 그의 결론은 권력형 부패를 막는 것, 즉, 권력자에게 돈이 가는 것을 막고 권력자가 청탁을 들어주는 길목을 끊는 것이다. 이를 단순화하면 돈 받는 것과 청탁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근절하는 것이 공정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권력은 뒷돈 없이 살 수 없는가’ ‘대의를 위해서는 선을 넘어도 되는가’ ‘검찰이 도둑을 제대로 잡으려면’ 등 책에는 도전적이어서 한층 매력적인 문제 제기가 풍성하다.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 하나,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듯” 인정과 관행이란 이름으로 사소한 청탁과 그에 대한 기대를 하는 우리들은 비리의 공모자이면서 또한 피해자다.
지난 4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영란법안’을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하기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전관예우’로 통칭되는 그들만의 리그가 법에 의해 어떻게 제재를 받을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