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JPG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 어른으로 성장하는 고통이 때론 유머러스한,

때론 담담한 고통어린 필치로 그려져 시선을 끄는 영화 두편이 국내

극장가에 소개된다. 이미 개봉중인 토드 솔론즈 감독의, 세계 영화계

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한다는 미국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 그

랑프리 수상작(96년)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02-578-4507/8)와 곧

개봉될 <엘비라 마디간>의 스웨덴 감독 보 비더버그의 유작 <아름

다운 청춘>(02-514-9393)이 바로 그것.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는 가정에선 위로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오

빠, 아래로 여우같은 처신으로 부모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여동

생 틈새에서, 그리고 학교에선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레

즈비언으로 불리며 소외당하는 11세 소녀의 성장 ‘생존기’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그려낸 영화다. 주인공 돈 위너가 동생 미시와 함

께 쓰는 방은 동생의 취향대로 온통 인형투성이인 그야말로 ‘인형

의 집’인데, 이를 통해 가상의 위험도 존재할 수 없는 인형의 세계

라 할 수 있는 가정의 평온함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풍자한다. 이곳

저곳에서의 구박덩어리인 돈 위너에게도 일말의 ‘장밋빛 인생’은

있어 오빠의 밴드 리더인 스티브를 짝사랑하고, 문제아인 동급생 브

랜든과 동병상련의 애틋한 정을 나누기도 한다. 그 와중에 돈의 고

의적 무관심으로 발레레슨을 받으러 간 귀염둥이 미시가 실종되어

온가족이 애통에 잠겼다가 다시 미시를 찾아내 돈은 또다시 부모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브랜든은 마약 소지 혐의로 학교를 떠나며, 스

티브는 돈의 사모하는 마음을 조롱한다.

디즈니랜드행 관광버스에 오른 돈의 심드렁한 표정을 배경으로

“우리는 아무 거리낌없이 자신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었노라고 말한

다”는 자막처리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누구나 한번쯤 겪게 마련인

성장기 고통의 내밀함을 한 소녀의 소외를 통해 그로테스크하리만치

극대화시킴으로써 공감섞인 연민도 자아낸다. 이를 반증하듯 미국

개봉시 순식간에 70여개 극장으로 확대상영되어 독립영화로선 전무

후무하게 전미 흥행 13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에 반해 <아름다운 청춘>은 북구의 분위기에 어우러져 다소 음

울하다. 그러나 원제인 ‘모든 것이 공정하다’가 암시하듯, 역시 사

춘기의 혼란을 지나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결코 생략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이 영화에선 이를 주로

사춘기의 성(性)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한다. 영화의 배경이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43년이기에 모든 제도와 규범이 파괴된 전쟁이라는

상황속에서 보내는 17세 소년의 성장을 통한 새 세계로의 입문이 유

럽인들의 상처와 정체성 찾기를 대변해준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

래서 96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특히 일찍부터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비더버그 감독은 자신의 아들 요한 비더버그

를 점찍어 그의 성장을 기다려 결국 작품을 완성했다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고등학생 스틱이 새로 부임한 여선생 비올라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

고, 남편과의 무덤덤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던 비올라가 이에 적극

반응함으로써 스틱의 생활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에 그가 따

르던 형의 잠수함사고로 인한 사망은 그의 삶에 한 획을 긋게 된다.

그러나 스틱의 변화를 감지한 비올라의 집요함은 순식간에 그들의

관계를 권력이 개입된 억압의 관계로 변화시키고 스틱은 이에 소년

으로서 할 수 있는 대응밖에는 할 수 없는데...

스틱과 비올라와의 관계는 섹스가 얼마나 정치적 관계 위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 또한 사춘기 소년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한계가 무엇인

지를 영상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내주면서 삶의 한 페이지를 넘겨 버

린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