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 ‘미스김’ 있다면 얼마나 살맛 날까요?”
“우리 회사에 ‘미스김’ 있다면 얼마나 살맛 날까요?”
  • 이은경 / 여성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3.04.11 09:42
  • 수정 2013-04-1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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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직장의 신’에 직장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4월 1일 첫 방송된 KBS 드라마 ‘직장의 신’(극본 윤난중, 연출 전창근 노상훈)이 직장인들을 위한 ‘힐링 드라마’로 초반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드라마 게시판엔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정규직, 계약직의 무거운 내용을 어쩌면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하게 이끌어 주시는지ㅋㅋ”류의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일본 NTV 드라마 '파견의 품격-만능사원 오오마에’가 원작으로 한국의 현실을 맛깔나게 접합해 순항 중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직장인을 끌어당기는 드라마 특유의 매력은 무엇일까.

 

KBS 직장의 신 은 특히 여성 직장인의 속마음을 미스김을 통해 직설적으로 대변한다. 미스김은 여성들에게 상당히 당혹스러운 회식 문화에 대해 시간 외 수당 60만원을 청구, 상사를 놀라게 했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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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직장의 신' 은 특히 여성 직장인의 속마음을 미스김을 통해 직설적으로 대변한다. 미스김은 여성들에게 상당히 당혹스러운 회식 문화에 대해 시간 외 수당 60만원을 청구, 상사를 놀라게 했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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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 상쾌 판타지...직장인 치유

드라마는 주인공 미스김(김혜수 분)의 포스 넘치는 등장과 함께 ‘미스김 비긴즈(begins)’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문을 열었다. 기존 직장과 직장인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는 것을 시사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에 앞서 공개된 포스터에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프랑스 대표 낭만파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 포스터엔 잔다르크를 연상시키는 미스김을 따르는 극중 인물들이 배치돼 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서류 더미를 배경으로 포스터 중앙을 가로지르는 것은 “칼퇴근을 허(許)하라!”라는 도전장. 세계 최고의 과로 사회인 한국 사회에 대한 항명이기도 하다.

개인 위에 군림하는 직장이란 거대 조직에 대한 도전이자 비정규직의 항거(?)를 대변해 쾌감을 선사하는 미스김은 똑 떨어지지만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없는, 톤의 높낮이조차 최소화한 로버트 같은 화법으로 직장인의 부조리한 현실을 냉소한다.

연장 계약에 목매는 계약직 노동자의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미스김의 ‘3개월’ 이후엔 단 하루도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근로계약 조건부터 ‘미스김 사용설명서’로 상징되는 철저한 업무 분장 조건과 사생활 영역 고집은 그에게 ‘수퍼갑 계약직’이란 신조어를 붙여주었다. 동시에 직장인들의 차마 말할 수 없는 은근한 로망을 대변한다. 미스김이 직장이 곧 인생인 엘리트 간부 장규직(오지호 분)에게 날리는 “기계와 인간이 같습니까”란 힐난에 이의를 제기할 직장인은 없으리라.

계약조건대로 회식 참석을 거부한다며 “그건 소속이 있는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경우지요. 무소속인 저의 경우, 불필요한 친목과 아부와 음주로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 같은 회식을 이행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라고 대꾸한다거나, 본명을 밝히라는 무언의 압력에 “제가 회사에서 왜 제 이름을 안 쓰는지 아십니까. 3개월, 6개월, 길어야 1년인 그곳에서 구질구질한 인간관계나 만들까봐서입니다. 회사는 우정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생존을 나누는 곳입니다”란 냉소어린 미스김의 대사는 직장인들의 부조리한 일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시원함을 준다. 여기에 더해, 계약 기간 이외의 시간에는 스페인으로 날라 가 투우사가 된다거나 밤엔 정열적인 살사 댄서가 되는 미스김의 ‘이중생활’은 더할 수 없는 판타지를 제공한다.

비정규직 설움... 여성들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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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제학자들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1997년 비정규직의 계약제 도입에서부터 비롯됐다고 본다. 월급이 반 토막이 나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극명한 차이는 직장인 간의 계급화를 가시화시켰다.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 시대, 이제 한국인의 소망은 정규직”이란 프롤로그와 더불어 드라마에서 이는 ‘된장’과 ‘똥’의 은유로 표현된다. 

정규직 외의 근로자는 동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장규직은 자신을 연모하는 3개월 계약직 정주리(정유미 분)에게 “내가 왜 계약직들한테 언니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나 봐?”라며 “식당가서 이모, 지나가는 여자한테 아줌마라고 부르는 거랑 똑같은 거야!“라고 빈정댄다. 그는 더 나아가 주리와 ‘친구’라 말하는 정규직 사원 금빛나(전혜빈 분)에게 “연봉 3000인 너랑, 1200인 이 언니랑 친구구나. 내가 몰랐네. 정년 3개월짜리 이 언니랑, 정년 30년짜리 너랑 친구인 걸 몰랐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칼같이 잘라버린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계약직 태반이 여사원으로 설정된 것은 비정규직 현실이 곧 ‘여성’이란 것을 대변한다.

제작팀은 “약육강식 세태를 풍자하고, 사회적 약자의 꿈을 응원”하는 것을 기획의도로 내세웠다. 극중 화자인 주리가 매회 반복하는 “누구나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의 트리인줄 알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그 트리를 밝히던 수많은 전구 중 하나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곧 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하찮은 전구에도 급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똥인지 장인지는 찍어 먹어봐야 안다는 것을”이란 대사는 극이 전개됨에 따라 이중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드라마가 카타르시스를 넘어 진정한 위로까지 선사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인간’은 살아있다

‘직장의 신’이 구태의연한 코믹 드라마로만 읽히지 않는 지점은 바로 ‘인간’이 보인다는 데 있다. 미스김은 주리의 ‘선배’ 호칭을 거부하지만 주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주리의 실수에 대해 이후 거론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구원투수 역할을 하거나, 사사건건 자신에게 딴죽을 거는 장규직에게도 원더우먼이 된다. 의아해하는 장규직에게 미스김은 "해녀들이 바다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압니까? 1분입니다. 1분이 지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1분마다 생존 위기를 겪는 해녀는 당신들처럼 거창한 우정을 나눌 여유는 없습니다. 그저 다음 사람을 위해 전복을 덜 따는 것이 우리들의 작은 의리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주리의 직속 상사 무정한(이희준 분)은 또다시 실수를 하고 면책당하는 주리에게 “라인도 없고 캐릭터도 없는 무능한 상사라서 미안하다”며 당장 눈앞에 펼쳐진 든든한 라인은 되어 줄 수 없지만 발밑에 있는 보이지 않는 계단은 되어 줄 수 있다. 스스로 혼자 힘으로 올라 올 수 있게 기다려주겠다”고 격려한다. 간장 게장 프로모션 성공 후 장규직은 ‘언니’로만 부르던 비정규직 주리에게 처음으로 ‘정주리씨’라고 부른다.

야근, 회식, 시간외 업무 거부와 함께 사적 대화와 과도한 칭찬도 철저히 배제하면서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출하는 미스김. “제 이름은 미스 김입니다. 아줌마가 아닙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미스김의 현실은 무색무취의 집단성 강요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독불장군처럼 보이는지를 거꾸로 보여준다. 미스김의 이 행보는 얼마나 지속될 수있을까. 이것이 바로 시청자들을 가슴 졸이게 하는 근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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