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타계… 영국 최초 여성 총리이자 20세기 이후 최장수 총리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지난 8일 아침(현지시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

1973년 교육부장관 재직 시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여성 총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던 그는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된 후 11년간 영국을 이끌며 1827년 이후 영국 최장수 총리로 기록됐다. 가난한 식료품점의 딸로 태어나 영국 최고의 지도자 자리에 오른 그의 인생은 전 세계 많은 여성들에게 ‘여성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고, 침체됐던 영국 경제를 되살린 그의 경제정책 ‘대처리즘’은 이후 많은 국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처 전 총리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 지도자들의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위대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총리, 위대한 영국인을 잃었다”며 “대처는 영국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영국을 구했다”고 애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계는 위대한 자유의 투사(champion)를 잃었고 미국은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면서 “깰 수 없는 ‘유리천장’은 없다는 것을 우리 딸들에게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네덜란드 방문 중 발표한 성명에서 “영국은 물론 전 세계에 강력하고 헌신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생전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리차드 스톤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 앞에 서 있다.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
생전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리차드 스톤이 그린 그녀의 초상화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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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상징 ‘대처리즘’ 경제정책

영국 경제 구했지만 빈부 격차 심화 비판도

“나는 이기기 위해 계속 싸웁니다.”(I fight on. I fight to win.)

1990년 영국 보수당 총수 선거 1차 투표 직후 한 이 말은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대처 전 총리의 면모를 보여준다.

34세이던 1959년 보수당 하원 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해 1975년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 1979년 최초 여성 총리가 되어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영국을 이끌었던 대처 전 총리는 동시대의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대처리즘’이라 불리는 그의 경제정책은 긴축재정과 민영화, 복지정책의 축소를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는 것. 석유, 항공, 항만, 통신 가스 등 국영기업의 대대적인 매각 작업, 어떤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만들어냈다.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반공주의를 통해 동서 냉전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고, ‘강한 영국’을 주장하며 포틀랜드섬의 영유권을 주장한 아르헨티나를 격퇴하고 북아일랜드 독립군을 무력 진압했다. 영국 유력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대처는 보수당뿐만 아니라 영국 전체를 변화시켰다”면서 “전쟁에서 승리한 윈스턴 처칠도 대처처럼 ‘이즘’(주의)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대처의 이 같은 경제개혁은 ‘영국병’이라 불리던 영국의 경기침체를 끝내고 경제 활성화를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고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등 ‘소수만을 위한 경제정책’이란 비판도 받았다. 특히 그의 경제정책으로 실업자가 된 광부들, 무력 진압에 희생당한 북아일랜드 주민들은 그를 ‘마녀’라 부르기도 했다. 그의 사망 이후 영국 곳곳에서는 대처리즘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대처 전 총리의 영향으로 영국의 공동체 정신이 소멸했으며 불필요한 분열과 갈등의 시기를 보내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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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의 일생을 다룬 영화 '철의 여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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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깬 여성 지도자지만

약자 외면한 안티페미니스트

영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인 대처 전 총리는 정치계의 ‘유리천장’을 깬 인물로 평가받는다. 식료품상의 딸로 태어나 총리의 지위에 오른 그의 커리어는 많은 여성에게 ‘여성도 강력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고 실제로 이후 세계 각국의 여성 지도자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보좌관이었던 폴 존슨과의 대화에서 그는 “페미니스트는 나를 싫어한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을 싫어하니까. 페미니즘은 독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성 인터넷 뉴스 ‘페미니스팅’은 “가부장적인 정치라는 철문을 부순 그의 행동은 페미니스트의 승리로 여길 수 있지만 그 자신은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대처는 사회 취약계층을 옹호하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에 적대적인 입장이었다는 것. 1987년 ‘위민스 오운’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각자의 의무다”라고 말한 그의 발언은 이를 대변한다.

교육부 장관 시절에는 우유 급식을 중단하며 ‘우유 도둑’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총리 시절에는 주택과 교육 등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도 없앴다. 또한 베트남 이민자를 ‘보트 피플’이라 부르고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를 옹호하고 넬슨 만델라를 ‘테러리스트’라고 칭하는 등 인종차별적인 면모도 보였다.

페미니스팅은 “대처는 여성도 남성만큼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서 “여성으로서 역사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권력으로 여성을 비롯한 취약 계층을 억압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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