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그 적들’ 펴낸 이나미 신경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융 분석심리학자로 정신분석 대중화 작업

“한(恨)으로 대변되던 한국인의 심성 자리를 지금은 ‘욕망’이 대체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서구 사회보다 더 이기적이 돼가고 있다. 한에도 욕망은 있다. 다만, 괴로워도 참고, 표현 안 하고 안으로 내면화할 뿐이다. 반면 욕망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이며 거기 이끌리는 대로 사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마치 욕망대로 살겠다고 작정한 것 같다.”

최근 도발적인 책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유주의 이념의 정당화를 시도한 칼 포퍼의 명저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패러디한 ‘한국 사회와 그 적들’(추수밭)이 바로 그 것. 책을 쓴 이나미(52·사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융 분석심리학자로 정신의학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다양하고 대중적인 글쓰기를 해왔다. 이번 그의 새 책도 부제 “콤플렉스 덩어리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이 암시하듯 직설적인 문제 제기와 그에 따른 성찰을 은연중 요구하고 있다. 물질·허식·교육·집단·불신·세대·분노·폭력·고독·가족·중독, 그리고 약한 자아, 이렇게 12가지로 콤플렉스 범주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분석해나간다. 저자는 “모두 아픈 대한민국”란 암울한 진단에서 시작하지만, 한국인의 집단정신을 세세히 그려 그 아픔을 분석하는 데서 역설적으로 미래의 힘을 내다보고자 한다.

비리 일삼는 지도층, 윤리기준 자체가 보통국민과 달라

“한국 사회는 욕망 때문에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분노가 있기에 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 모순덩어리 사회지만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욕망’이 아프리카나 중동처럼 테러나 내전에 의해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말’로 다 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강점이다. 언론 보도부터 온라인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말을 통해 표출하고 화낸다. 과거사를 자주 잊는 것, 단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장점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 덜 집착하지 않는가.”

그는 말끝에 일찍이 미국 뉴욕대에서 노자 사상을 강의했던 강용흘 교수가 1930년대 영문판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자전적 소설 ‘초당’(The Geass Roof)’에 묘사된 근대 한국인의 정신을 언급했다. 과거급제자가 나오면 떠들썩하게 동네잔치를 열 정도로 공동체가 살아있고, 체면과 명예를 중시했던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한다. 오히려 서양사회보다 더 이기적이 되어버렸다. 서구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서구의 외향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성격이 훨씬 극대화됐다는 설명이다.

“전통 유교 정신은 이미 깨지고, 그렇다고 서양식 청교도적 전통이 이를 대체한 것도 아니고...외래문화와 사상을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였지 진정 체화하지는 않았기에, 말하자면, 정신적인 블랙홀이 생겨난 셈이다. 그래서, 정신적 공허를 느끼니 이를 욕망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서양식의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서양 사회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가부장적 유교 관점에서 보면 반동적이다. 문명 발달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보자면 굉장한 진보고, 영성과 정신적 측면에서 보자면 퇴행적이다. 그만큼 사회가 다양화 됐기에 어떤 안경을 쓰고 우리 사회를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것이고, 어느 한 쪽으로 섣불리 예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혼재 탓인가. 소위 사회 지도계층의 도를 더해가는 성 추문, 끝도 없는 비리의 드라마는 늘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주변 인사들의 몰락을 직접 보면서도 왜 그들은 이토록 멍청한 실수를 반복하는가.

“가령, 일제시대 36년을 생각해보자. 수십 년을 한반도라는 한 공간에 살았어도 반일주의자와 친일주의자의 국가관은 엄연히 달랐던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즉 모럴 스탠더드(Moral Standard) 자체가 다르다. 죄책감의 기준도 다를 것이다. 이들 극소수 기득권층에게 보통 시민의 윤리적 잣대로 문제를 삼는 것 자체가 유치한 일일 것이다. 지금 도덕적으로 혼란을 겪는 이 시기가 전환기적 과도기일 것이라 본다. 어느 정도 진통을 겪은 후엔 우리 식의 새로운 도덕 기준이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를 투자로 보는 한국 부모들, 이기적 바보다”

그는 잘 알려져 있듯이 교육 문제에 정신의학자로서 적극적 관심을 표해왔다. 이번 ‘한국 사회와 그 적들’에서 다루는 교육 콤플렉스는 대상이 부모로 옮겨지면서 ‘애정을 넘어 애증으로’ 자녀를 범죄자로 만드는 부모들’ 등의 소제가 시사 하듯 냉소적이고 가차 없다. 일전에 EBS TV에서 그가 교육 특강을 하면서 한국 부모들에 대해 “이기적인 바보들”이란 역설적이나 정곡을 찌르는 표현을 썼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국의 부모들은 스스로 문제를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오히려 부모로서의 이기심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들어가면 아이들도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엄마의 희생 이데올로기나 외부 정보에만 의존하는 게 바로 문제다. 아이에게 한 달 수십, 수백 만 원을 투자하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해도 정작 아이들은 고마워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이를 그냥 사랑만 하면 되는데, 자기불안이 하도 커서 또 과시욕 때문에 아이를 진정 사랑하지 못한다. 아이를 투자 대상으로 은연중 생각하니 이해관계가 생겨버리는데, 어찌 거기에 사랑이 끼어들 공간이 있겠는가.” 

발달심리학적 입장에선 아이의 도덕관념은 학교 입학 전 양육자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똑똑하고 대단히 경쟁적인 성향의 부모들은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란 말로써 “설령 네가 잘못해도 꼭 사과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남을 이겨라”는 말로써 “커닝이나 폭력 정도는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메시지를, “남 신경 쓰지 말고 네 것만 챙겨라”란 말로써 “약하고 아픈 사람, 꼭 도와줄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때론 은연중으로, 때론 노골저으로 보내 자녀들을 냉혹하고 지능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그는 일갈한다.

“광풍적인 교육열로 엄마들만 탓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엄마들이 왜 그러겠는가. 우리 사회가 성적을 따져 사람 전체를 서열화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심리적 측면에서만 얘기하자면, 비록 비정규직 노동자라도 인간적 생활과 노후가 보장되는 사회라면 엄마들의 불안 때문에 수많은 교육 문제가 생겨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 과연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 물어보았다. 두 아들에게도 스스로의 이론을 적용해보았느냐는 우문과 함께.

“한마디로 ‘원시적’이고 건강한 모성적 본능을 가진 엄마가 좋은 엄마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는 본능으로 키우는 것, 과도한 이론 적용은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를 틀어지게 한다. 내 새끼니 배고파하면 무엇인가 먹이고 싶고, 졸려 하면 재우고 싶고, 밖에서 싸우고 오면 가슴이 아파 안아주고 싶고...이렇게 아이들을 키워냈기에 옛날 어머니들은 된장찌개만 끊여줘도 충분히 자식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 아닌가. 좋은 엄마일수록 간섭은 최소화하고 자율성은 최대화 하는 양육 방식을 택한다. 예전 ‘내가 뭘 아나’ 하며 자식을 무조건 믿어주던 그때의 어머니들처럼 아이를 따지지 않고 믿어주는 엄마가 바로 아이의 창조적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엔 종교적 영성이 필요하다”

중학교 때 집 서가에 꽂힌 프로이트의 책을 우연히 읽고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는 다방면에 걸친 활발한 대중서 작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부터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오십후애사전’ 등의 저서와 함께 마고신화, 한국 의녀, 허난설헌 나혜석 전혜린 등 자의식 강한 여성 예술인 등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정신의학적 관심을 대중화해 풀어냈다.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뉴욕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신학 강의교수를 지낸 특이한 이력도 있다. 그는 융이 목사 아들이기때문인지 융의 분석심리학은 종교적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해 못할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실제로 성당에 다니고 있는데 인생의 의미와 더불어 성서와 심리학이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느냐는 것이 내겐 아주 큰 질문이다. 분석심리학은 기계적 접근을 하지 않는다. 마음과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환자를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인이 될 필요는 없으나 종교적이 될 필요는 있다. 종교적이 된다는 것은 내면 깊숙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영성과 영혼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육체와 함께 자신을 더 타락시킬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동물이다. 이것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영성에 대한 관심이라 생각한다.”

그는 책을 낼 때마다 ‘공부가 참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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