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미국 코넷티컷 토링턴시와 시 관할 경찰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290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은 트레이시 트루먼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매 맞는 아내였다. 남편의 잔인한 폭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폭행을 당할 때마다 경찰에 처절한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경찰은 그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목을 칼로 베이는 남편의 무자비한 폭행이 벌어진 것도 바로 경찰 눈앞에서다. 겨우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그녀에게 판사는 ‘법 앞에서 동등하게 보호받을 평등권’을 침해당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시와 경찰서의 직무유기를 질타하는 배상 판결을 내렸다.

‘트루먼법’은 미국 사회에서 영장 없이 가정폭력 정황만 포착되면 가해자를 즉시 체포할 수 있는 의무체포의 서막을 알렸다. 의무체포는 이런 점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의 범행을 경계하고자 만들어졌다기보다 신고를 받고도 아예 출동하지 않거나, 혹은 출동해놓고도 피해자에게 핀잔을 주거나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찰들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들의 소극적 태도로 온갖 소송에 시달리며 패소를 거듭하던 시와 주정부는 의무체포 도입을 통해 경찰들로 하여금 가정폭력 가해자를 자동적으로 체포해야 하는 직무를 반드시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경찰들의 안이한 태도를 들여다보면 가부장적 편견 이외의 원인이 있었다. 경찰의 입장에선 열심히 체포해봐야 곧장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관행이 횡행했던 가정폭력 사건에 시간과 공을 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사회는 의무체포에 이어 강제기소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가정폭력 가해자는 고소 취하 없이 검찰에 의해 반드시 기소가 되도록 법을 바꾼 것이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가해자가 처벌받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자 경찰들은 가정폭력 사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가해자 체포에도 열을 올렸다. 한 예로 워싱턴주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되기 전 5%에 머물던 체포율이 법이 시행된 이듬해 41%로 상승했다.

우리 사회에서 잇따르고 있는 가정폭력, 아내 살해에 대한 보도를 보고 있자니 이제 우리 사회도 트루먼법을 위시한 강제 정책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사회와 법원이 가정폭력을 범죄라 생각하지 않는데, 그 당사자가 자신의 행동을 가정폭력이라 여길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얘기하노라면 레퍼토리처럼 들려오는 얘기가 있다. 아내들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니라 남편을 죽이는 여자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고 싶다. 아내를 살해한 남성은 장기간 아내폭력의 가해자였지만, 남편을 살해한 여성은 장기간 아내폭력의 피해자였다는 그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를 말이다. 용서와 화해, 조화와 배려의 문구들로 뒤덮인 가정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