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극작가 인터뷰
여성극작가전에 '새벽 하늘의 고운 빛을 노래하라' 올려
“흔히 나혜석은 도덕적 문제가 있는 여성 화가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그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한 예술가입니다. 또 여러 권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해요. 그의 언어를 최대한 살려 천재 예술가 나혜석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최명희(68·사진) 극작가가 쓴 ‘새벽 하늘의 고운 빛을 노래하라’가 공연된다. 우리나라 여성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을 다룬 이 작품은 제1회 여성극작가전 마지막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천재 예술가 나혜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최명희 작가를 지난 15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그는 전작 ‘반가워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에서 허난설헌의 이야기를 다룬 데 이어 이번에도 시대를 앞서간 여성을 조명했다. 최 작가는 “연륜이 쌓일수록 드라마를 만들기보단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인물을 조명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며 “특히 비극적인 삶을 산 여성들의 이야기에 눈이 가는 건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비극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나혜석이라는 이름 석 자를 처음 접한 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스캔들 주인공으로서의 나혜석이었다. “아버지는 ‘여자로서 나혜석의 팔자는 기구하다.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살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가 나혜석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그의 글을 접하고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나혜석 전집’ ‘정원 라혜석 전집’이 발간되면서 작가로서의 나혜석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화가인 줄만 알았지만 그렇게나 뛰어난 작가인지는 몰랐죠. 글을 읽으면서 그의 진가를 알게 됐어요.”
불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비참한 말년을 보낸 나혜석은 영화, 연극, 뮤지컬 등 장르 구분 없이 많은 작품에서 다뤄졌다. 최 작가는 “그중 좋은 작품도 많지만 도덕적 판단에 갇힌 나혜석을 조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예술가로서의 나혜석보다는 그의 스캔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주옥과 같은 그의 문장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며 “내 목소리보다 그의 목소리 위주로 담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을 보러 올 관객에게 “천재 예술가 나혜석의 목소리를 많이 담은 연극이다. 도덕적 판단은 뒤로하고, 인간 나혜석에 대해 여러분 나름의 해석을 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새벽하늘의 고운 빛을 노래하라’는 27일부터 31일까지 대학로 알과핵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6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