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계급 차별… 호모포비아 비판 의견도
1963년 첫 출간된 ‘여성의 신비’는 ‘행복한 현모양처’라는 당시 이상적인 여성상을 비판하고 여성들에게 스스로 삶과 의식을 변화시킬 것을 촉구하며 당시 수많은 여성의 호응을 얻었다.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The Second Wave)이라 불리는 1960년대 여성운동의 기폭제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책이 미국 여성운동에 끼친 영향을 분석함과 동시에 21세기에도 그 주장이 유효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토론의 물꼬를 튼 것은 뉴욕타임스. 2월 12일 ‘여성의 신비, 그 후 50년’을 주제로 토론방을 연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게일 콜린스가 사회를 맡고 ‘진화하는 결혼’의 저자인 가족학자 스테파니 쿤츠, 여성 온라인 뉴스 ‘제제벨’의 설립자인 안나 홈스, 여성운동가 셸비 녹스, 노동운동가인 밀리 실바가 참여해 화상 토론을 벌이고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했다.
이외에도 온라인 뉴스 ‘데일리비스트’는 ‘여성의 신비’에 대한 페미니스트 언론인 3명의 토론 기사를 게재했고, 영국의 BBC 라디오는 전화와 이메일, 트위터로 의견을 나누는 청취자 토론 프로그램 ‘우먼스 아워’를 진행했다. ‘여성의 신비’ 50주년을 기념하는 오프라인 토론회도 뉴욕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개최됐다.
이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지난 50년간 많은 부분에서 정치·사회·경제적 성평등이 성취됐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깨뜨리기 힘든 유리천장이 존재하며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여성의 재생산권 논쟁은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슈가 되고 있다. 프리던이 ‘여성의 신비’에서 주장한 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작가인 나네트 폰다스는 ‘디 애틀랜틱’에 게재한 칼럼에서 “‘여성의 신비’를 다시 읽으면 현명한 페미니스트 할머니로부터 삶에 대한 지혜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인생의 과업을 찾고 뒤따르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문제를 해결하라는 프리던의 지혜는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공유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성의 신비’에서 주장하는 바가 여전히 유효한가를 생각해볼 때 너무 많은 것이 변한 게 사실이다. 페미니스트 블로그 ‘페미니스팅’은 “50년 전 중산층 주부가 가졌던 ‘불만’은 더 이상 큰 고민이 아니며 오늘날 미국 가정을 사로잡은 걱정거리는 주택 할부금이나 대학등록금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정주부’의 모델이 중산층 백인 여성에서 흑인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로 변한 지금, 차세대 여성운동은 더욱 융통성 있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즈 매거진이 ‘여성의 신비’ 50주년을 맞아 독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변화된 사회상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많은 독자들은 “프리던이 ‘여성의 신비’에서 주장한 바는 ‘주부의 역할’이라는 덫에 갇혀 있으며 오늘날 젊은 여성들에겐 낡은 사상”이라고 대답했다. 즉, 프리던의 주장은 21세기 여성들에게 가이드북이 되기보단 ‘주부들의 세대의 문제’를 환기해주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즈 매거진 필진인 작가 캐서린 스콧은 “제4세대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현 세대에게 바지 착용이나 혼전 동거 허용을 외쳤던 어머니 세대의 투쟁은 역사 속의 일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페미니즘의 역할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직면해 있는 차별과 장벽은 한 권의 책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신비’가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애틀랜틱’ 연예면 담당자인 애슐리 페터스는 ‘여성의 신비가 가진 4가지 문제점’이란 기사에서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읽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색인종이나 저소득층의 문제를 외면하고 대학 교육을 받은 중산층의 결혼한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삼은, 인종·계급 차별적이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를 ‘라벤더의 위협(Menace)’이라고 일컬었던 것처럼 호모포비아적이라고 비판했다(프리던은 1977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레즈비언 권리 운동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또한 프리던이 평범한 가정주부라기보다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몸담았고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볼 때 “이름이 없다는 문제”(the problem that has no name)라는 유명한 구절은 거짓말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