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간이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버려진 공간을 개조해 예술가들의 창작·전시 공간을 제공하는 서울시 창작공간 정책이 올해로 5주년을 맞이했다. 이 사업은 서울시 예산으로 서울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사업의 목적은 예술가의 창작공간 확보와 시민의 문화적 활동 참여로 도시 재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있다. 사업 5년 차를 맞은 이 사업에 대해 입주 작가들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11곳의 창작공간 중 공연이나 연습실 대관 사업에 주력하는 남산예술센터, 남산창작센터를 제외한 9곳이 예술가들의 창작·전시를 지원한다. 이 가운데 홍은예술창작센터를 비롯해 연희문화창작촌, 금천예술공장, 잠실창작스튜디오, 성북예술창작센터,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선 매년 입주 작가를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개 공간에 입주한 작가 수는 총 174명(팀)이다. 그 중 23명(팀)이 외국에서 왔다.

해외 교류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는 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인 이창훈씨는 “외국 작가나 큐레이터들의 입주로 다양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다”며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기성 예술가, 큐레이터, 언론인들과 접촉할 기회도 많아 개인 작업실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만족한다”고 말했다.

또한 금천예술공장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입주 작가들을 모아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작가는 “대부분의 예술가는 대학 졸업 후 개인 작업실에 고립돼 외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며 “여기에선 간담회에서 친분을 쌓은 작가들과 이후에도 만나 전시나 공모 등 다양한 정보를 꾸준히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황학동 서울중앙시장 내부에 있는 신당아케이드는 지난해부터 순수예술가뿐만 아니라 제품 디자이너도 입주 작가로 들이는 실험을 하고 있다. 노지훈 작가는 2.5평형 남짓한 공간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문구 디자이너인 그는 “순수 예술 작가들과 많은 정보를 교류할 수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올해에도 입주 작가로 선정돼 이곳에 남고 싶다”며 재입주 의지를 보였다.

반면 지난해 A모 창작공간에 입주한 김명희(가명) 작가는 “동료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는데 자잘한 업무가 많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예술가를 위한 정책이 예술을 방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담당자나 실무자들이 입주 작가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정책을 꾸준히 손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난지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등 정부 주도 창작공간 입주제도를 여러 번 활용한 이창훈 작가는 김씨의 주장에 “이해가 된다. 입주 작가들이 시민과 만나는 프로젝트를 할 경우, 대부분의 관리자는 작가가 시민의 수준에 맞춰 프로젝트를 설계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술가의 능력치나 작업 성향 등을 관리자들이 잘 이해해 정책에 적절히 반영하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예술가' '시민' '도시 재생'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는 서울시 창작공간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신의 교수는 “이 사업은 작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예술을 정책적으로 지향하지만 이게 실제로 가능하기 위해선 작가들이 해당 지역에 최소한 3년 이상은 있어야 한다”며 “현재는 1년 후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 사업 목적 중 셋은커녕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신의 교수는 또 “작가들은 대부분 창작공간 확보와 다른 작가와의 교류를 위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다”며 “정책적 의미는 좋으나 입주 기간,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방향 등을 작가들과 함께 논의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본부 한정희 매니저는 “서울시 창작공간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사업이라 태생적으로 다른 공간지원 사업과는 다른 성격을 띤다”며 “앞으로 작가·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해 정책을 조금씩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