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법 제정 이후 가정폭력 줄어
지역 중심으로 법 실행 감시위원회 설치
뿌리 깊은 유교 영향 가부장제 공고
2007년 베트남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당시 제정 위원으로 참여했던 하노이 대학의 레티뀌(Le Thi Quy·63) 교수는 법 제정의 효과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해 여성들이 가정폭력 조사에 응답하기를 꺼리고 있어 국가적 통계를 구축하기가 어렵습니다. 국제적인 조사에서도 여성의 3분의 1만이 응답을 했고요.”
레티뀌 교수는 베트남에서 법 제정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을 가시적인 폭력과 비가시적인 폭력으로 유형화하고 ‘노동폭력(labor violence)’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학자이기도 하다.
“노동폭력은 남편이 돈벌이를 전혀 하지 않고 아내에게 중노동을 시키며 집안일과 가족 부양의 짐까지 지우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가정폭력 연구를 시작할 때는 이러한 노동폭력이 가정폭력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하지만 연구가 진행되고 법이 만들어지면서 가정폭력에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과 노동폭력까지 4가지 유형으로 세분화됐고 최근에는 남성들도 노동과 가사를 아내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베트남은 1945년 이후 사회주의당에서 계급의 해방과 더불어 여성의 해방을 주창하며 다양한 정책을 실시해 왔으나 오랫동안 사회문화에 스며들어 있는 유교의 영향으로 가정폭력 발생 등 가부장적 잔재가 아직까지 위력을 떨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배경에서 레티뀌 교수가 가정폭력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지방정부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국민에게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지방정부를 주요 목표로 삼아 정책을 펼치는 것이 주요한 전략이었습니다. 지방정부와 작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캠페인을 펼치면 지역 주민들이 동요하고 법령에 대한 정보와 정책들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정책을 실행하는 공무원 교육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의 경찰과 공무원에게 더 집중했고, 효과가 있었습니다.”
옛 소련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레티뀌 교수는 귀국 후 베트남 사회에 가정폭력과 성매매가 성행하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95년에 인신매매 연구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가정폭력이나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모듈을 만들고 지역에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는 ‘젠더와 개발 연구소’라는 비정부기구(NGO)의 대표이기도 하다.
“‘젠더와 개발’이 중요한 이슈인 만큼 이번 세미나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이 가정폭력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을 비준했고 이에 대한 정책적 이행을 약속했습니다. 이처럼 네트워크와 국제기구를 통한 변화가 중요합니다. 또 이번 네트워크가 아세안 국가들의 여성운동을 논의할 수 있는 장으로 역할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