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이 심각하다지만 1년 내내, 하루 종일, 전기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전기에도 러시아워가 있다. 한꺼번에 전력 사용이 몰려서 정전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큰 러시아워는 1년 8750시간 중 500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여름철에는 에어컨 사용을 많이 하는 낮 시간(오후 2~5시)에 전기가 부족하다. 겨울에는 그 시간대가 달라져 오전 9시 출근 시간부터 전력 부족 사태가 나타났다가 낮 12시 점심시간이 되면서 해소된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는 오후 5시부터 다시 전기가 부족해진다. 그 시간대만 잘 넘기면, 정전의 위험이 사라진다. 또 그 시간대에만 가동하려고 평상시엔 불필요한 발전소를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전력 피크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전기를 아끼는 것은 정전 사태를 예방하고, 발전소를 새로 짓느라 유발되는 사회적 갈등과 예산 낭비도 막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실천이다.

1월 셋째 주와 넷째 주, 최악의 전력 부족 사태가 예고되자 서울시 공무원들은 점심시간을 변경했다. 지난 9일부터 서울시와 25개 구청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은 오전 11시로 한 시간 앞당겨졌다. 정전 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큰 피크 시간대의 전력 사용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

서울시와 25개 구의 공무원 수는 4만 명.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컴퓨터와 프린터, 조명을 모두 끄면 1시간 동안 1만8000㎾h의 전력을 아낄 수 있다. 이는 형광등 60만 개를 1시간 동안 켜놓는 전력량과 같다. 적지 않은 양이다. 전력 피크를 완화하는 실제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전력난 극복을 위해 점심시간을 바꾼 것은 지자체로서는 서울시가 처음이지만, 한국전력 등 발전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에너지와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일들이 에너지 때문에 변하고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프로야구 룰이 바뀐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 전력 사용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으니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투수가 포수에게 공을 던지기 전에 작전 짜는 시간을 길게 끌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룰은 2008년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고, 국내에도 2010년 도입됐다.

앞으로는 더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물값이나 지하철 요금 등이 전력 피크 시간대에 더 비싸질 수도 있다. 전기요금이 인상될 뿐 아니라 피크 시간대에 전기를 아껴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 전기가 부족한 시간대의 요금 단가를 평상시보다 비싸게 물리는 요금제의 적용 대상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요금 단가 차이도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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