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작은 분노’가 사회운동으로 이어져
아동성폭력, 탈핵, 청소년 문제 등 사회변화 주체로
지난 9월 4일 30여 명의 엄마와 아이들이 우비를 입고 손에는 촛불을 들고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앞서 7월 여주에서 발생한 4세 여아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발자국’ 카페 회원들이 아동성폭력 추방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것이다. 빗속에서도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안고 집회에 참가한 ‘평범한’ 엄마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다들 시위를 해본 경험이 없어 구호대신 동요 ‘뽀뽀뽀’와 ‘곰세마리’를 불렀다. 발자국 운영자인 김혜원씨는 “곰세마리를 부르면서 울어본 사람들은 저희뿐일 것”이라며 당시 절절했던 엄마들의 마음을 전했다. ‘발자국’은 네 살짜리 딸을 가진 ‘지유엄마(닉네임)’가 여주 사건을 보고 카페를 열면서 시작됐다. 12월 현재 카페 회원 수는 1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80% 이상을 30·40대 여성이 차지하고 있으며, 20명의 운영진 중 70%가 아이 엄마다.
발자국 회원들은 서울역 집회 이후 명동역과 부산에서도 집회를 열었고, 지금은 ‘아동성범죄자 형량 20년 이상 강화와 아동인권보호국(가칭) 신설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매주 토요일 지하철 건대입구역에서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사는 엄마들은 각 지역의 축제와 아파트 장터 등에서도 서명운동을 진행하며 아동성폭력 근절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발자국 회원들은 아동성폭력 기사에 음란 댓글을 단 ‘악플러’ 74명을 9월 18일 검찰에 고소했다. 이후 신원 파악이 완료된 30여 명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발자국은 앞으로도 어린이집 알림장에 서명지를 함께 보내거나 육아모임 등을 통해 생활 밀착형 서명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혜원씨는 발자국 활동에 대해 “엄마의 작은 분노가 여러 부모의 공분으로 이어지고 사회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우리가 특별히 정의로운 게 아니라 우리의 아이가 안전하기를 바라고, 나아가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요리 사이트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걱정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은 탈핵운동가로 변신했다. 지난해 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유출된 방사능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 엄마들은 공부를 시작했고 전문적인 정보 교환과 조직적인 행동을 위해 ‘차일드 세이브’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방사능으로부터 내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집에서만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학교 급식이나 각종 식품첨가물 등 관심의 대상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엄마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에 급식 제안서를 전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각 지역 교육청과 학교 영양사, 어린이집에 제안서를 전달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청, 환경부, 지식경제부 등 관공서에는 지속적으로 민원을 접수했다. 기업에는 식재료의 원산지 문의를 하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12월 현재 1만 명이 넘는 카페 회원들 중 70% 이상이 여성이고 카페 스태프 5명은 모두 아이를 가진 30·40대 여성들이다. 카페 회원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흙과 배추, 생선 등의 식재료를 외국 연구소에 보내 방사능 검사를 요청하는 식의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차일드세이브 운영자는 “내 아이와 우리의 아이들 모두가 살아갈 세상이 좀 더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우리 카페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엄마들의 관심이 지역사회 위기 청소년들을 돌보는 활동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서울 동작구를 중심으로 지역운동을 펼치고 있는 풀뿌리 여성단체인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좋은세상)’에서는 청소년기 자녀를 둔 엄마들이 청소년 문제를 고민하는 거리 상담가로 변신했다. 이들은 내년 1월 10대 청소녀들을 위한 전용 공간도 오픈할 예정이다. 보증금 2000만원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100만원, 200만원씩 모았다. ‘좋은세상’ 박신연숙 사무국장은 “여성들이 엄마라는 정체성 속에서 젠더감수성 교육과 지역활동을 통해 자기 세계가 확장되는 개인으로서의 역량 강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