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으로 34년 만에 청와대 복귀

 

어느 해 명절 청와대에서 찍은 박근혜 당선인의 가족 사진. 아버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곁에서 보낸 18년은 그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대선캠프 제공
어느 해 명절 청와대에서 찍은 박근혜 당선인의 가족 사진. 아버지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곁에서 보낸 18년은 그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됐다. ⓒ대선캠프 제공
박근혜에게 위기는 가혹한 운명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빛나는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34년 만에 대통령의 딸과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뛰어넘어 자력으로 화려하게 청와대로 ‘복귀’하는 그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본다.

“부모 잃은 불쌍한 근혜”…유권자 표심 자극

1952년 당시 육군본부 작전차장 박정희 대령과 중등학교 교사 출신인 육영수씨의 큰딸로 대구에서 출생한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 대령이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초등생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18년을 지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해 학자를 꿈꿀 때만 해도 그의 삶은 내내 평탄할 것만 같았다.

1974년 8·15 경축식장에서 어머니 육 여사가 총탄에 스러지며 급거 귀국, 22세 때부터 아버지 박 대통령이 측근의 총탄에 서거한 1979년까지 5년여를 퍼스트레이디 대행 역할을 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로 얼룩진 저고리와 와이셔츠를 손수 빨면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비극적 가족사는 노년 세대의 향수와 동정을 자극하는 주요 기제가 됐다.

5년여를 퍼스트레이디로 절대적인 최고 통치자 곁을 지킨 이력은 후에 국정 운영 능력을 재단하는 최고의 스펙이 됐다. 아버지 박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전방은 괜찮나요?”라는 말부터 던졌다는 그는 이미 그때부터 위기대응 감각을 체득하고 있었던 듯하다.

청와대를 떠나 육영재단, 영남대 재단, 부모님 기념사업회와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으로 조용히 살았던 그를 다시 격동의 정치현장으로 이끈 것 역시 IMF 국가 위기였다. 구국의 심정으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대선을 지원하며 1997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이듬해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압승,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9대까지 내리 5선 의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정치여정 중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여성’으로서의 특혜를 거부할 뿐 아니라 ‘여성’ 정치인으로 부각되는 것을 극히 불편해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2000년 여성 지명직으로 자동 임명되는 부총재직을 마다하고 자력으로 부총재에 올랐고, 2004년에는 39년 만에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당대표에 올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당의 구원투수로 ‘선거의 여왕’에 등극하게 된다.

‘천막당사’ 헝그리 정신으로 ‘선거의 여왕’ 등극

2004년 당 대표 당시 당이 불법 대선자금으로 차때기 정당이란 조소를 받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하자 과감히 여의도 당사를 팔아 천막당사로 이전, 참회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면서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는 신촌 지원 유세 도중 커터칼로 얼굴을 피습 당해 중상을 입는 위기를 겪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대전은요?”라며 지방 판세를 물을 정도로 무서운 승부욕을 보였고, 당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2011년 말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참패와 디도스 공격 파문 여파로 총선 전망이 암울한 가운데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파격적인 외부 인사 영입과 감동 공천 등으로 19대 총선 역시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물론 그의 정치여정에 늘 전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갈등은 대부분 대선을 둘러싸고 빚어졌다. 2001년엔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해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가 2002년 말 재입당하기도 했고, 2007년 대선 경선 때는 이명박 대통령과 치열한 접전 끝에 석패를 하기도 했다. 이때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는 내내 불편한 관계였고, 2008년 18대 총선에선 자신을 따르는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낙천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권 여당이면서도 이명박 정부와 일정 선을 긋는 여당 내 야당 세력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 참배하는 박 당선자.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에 참배하는 박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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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촬영

조자룡이 첫사랑이었던 모범생에서 최고통치권자로

“삼국지를 손에 잡던 날,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라며 “나의 첫사랑은 조자룡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며 수줍게 초등학교 시절을 회고했던 박근혜. 지나칠 정도로 어른스럽고 과묵한 모범생으로 대학에 진학해서도 그 흔한 미팅 한 번 못 해봤다는 그에겐 애초부터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은 금기였을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이란 책을 쓰면서 마음을 달랬을까. 2007년 출간한 그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고백이 향후 최고 통치권자로서의 5년 동안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범상치 않은 삶에서 길러진 내공이 어떤 비전으로 펼쳐질지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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