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간 수요시위를 주도하며 국내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려온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여성신문사의 ‘2012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할머니들은 특히 올해 위안부 문제를 대중의 문제로 확산시키고 정부와 국제사회를 움직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군위안부로 정부에 등록된 236명 중 12월 말 현재 생존자는 59명뿐. 여성신문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도움으로 전체 피해자 중 사진 공개가 가능한 할머니들 35명의 모습과 활동 성과를 싣는다. <편집자주>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영하의 날씨에도 수요시위에 꾸준히 참가 중이다. 수상 소식을 전하자 길 할머니는 “한 일 없이 상을 받아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며 겸손하게 웃었다. 길 할머니는 “우리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일본 정부가 사과하고 배상하도록 힘을 보탤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우리가 죽기만을 바라고 있겠지만, 수요집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우리가 죽은 뒤에도 뜻을 이어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 놀라게 한 할머니들의 증언
“내가 오늘날 동회에서 주는 쌀 10㎏, 돈 3만원에 매달려 한 달을 사는 불쌍한 늙은이가 된 것은 내가 정신대였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일본이 정신대로 끌려간 사실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억장이 무너집니다.”(‘20년간의 수요일’ 인용)
김 할머니는 17세 때 중국 베이징에서 납치돼 일본군 300여 명이 있는 소부대로 끌려가 하루 3~4명의 군인을 상대했던 일을 밝혔다. 생리 때도 예외가 없었던 아픔까지 소상히 이야기했다. 같은 해 12월 할머니는 다른 두 명의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소송으로 국제사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일본에서도 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조직될 수 있었다.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자임을 밝히기 시작했을 때 다른 피해자들은 얼굴을 드러내길 기피했지만 문제 해결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차츰 세상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국제사회에서 이슈화하는 데 앞장섰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우리나라는 물론 각국 의회와 일본 등 지방의회에서도 결의안 채택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30일에는 2006년 할머니들이 ‘정부가 한·일 간 재산 및 청구권과 관련한 분쟁을 해결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국가의 한·일청구협정 대해 헌법소원청구를 했던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결정을 내렸고,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게 될 수 있었다. 또 지난해 12월 14일에는 1000번째 수요시위와 평화비 건립이 이뤄져 대중에게 위안부 문제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20년의 노력, 결실 얻기 시작
2012년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20여 년의 결실을 보기 시작한 ‘수확’의 해다. 그동안 할머니들이 짊어졌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당위는 이제 대중에게 ‘우리’의 문제가 됐다. 여성운동 차원에서만 접근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종교단체 주최로도 활동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어린 초등생부터 대학생까지 학생들의 관심이 고조돼 수요시위 참가자 평균연령은 이제 20대 초반이 됐다.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확산되는 동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복동 할머니는 연말 타종 행사와 3·1절 행사에 국민 대표로 참석했다. 올해 여름에는 9년 만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세워져 할머니들이 겪은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게 만들었고 전시 성폭력 문제를 위한 연대의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한·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됐고, 국제사회에서도 추모비를 세우고 연대를 함께 했다.
일본 우익 반발 최고… 말뚝 테러까지
올해는 할머니들에게 최고의 해로 기록될 수도 있지만 반대·비난하는 세력의 반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일본에 집회를 가면 우익들은 삿대질을 했다. “부끄럽지 않으냐”고 손가락질을 하고 대놓고 “조선 매춘부는 조선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도 여전했다. 할머니들을 기리는 소녀상에는 ‘말뚝 테러’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1년 연말 김복동 할머니의 보신각 타종이 있은 후 일본의 한 언론은 ‘매춘부를 국민의 대표로 세우는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피해는 고스란히 할머니들의 몫이었다. 윤 대표는 “이런 어려움이 있어도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 죽어도 오늘 하루 내 삶이 소중하다고, 자신이 가치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게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할머니들은 대중의 격려와 칭찬이 많을수록 얼굴도, 건강도 좋아져 정신력이 건강을 이긴다는 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며 이를 통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 중 여성인권유린 범죄를 해결하고자 애썼다. 정대협 내 전쟁과여성인권센터를 발족해 무력갈등하에 벌어지는 여성인권 문제와 연대하고 관련 자료도 모으게 됐다. 최근에는 연대의 범위를 넓혀 기지촌·성매매 여성들과도 손을 잡기 시작했다. 운동 초기 각 피해자들은 서로 자기 피해를 감추고 다른 피해와 섞이기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가부장적, 군국주의, 시대적 상황에서 희생자가 돼야만 했던 한국의 여성으로서 아픔을 이해하며 스스로 아픔의 경계를 없애고 피해자들의 손을 맞잡았다. 이러한 연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평화와 치유의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피해 생존자 활동, 사회 변화시켜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이 있었던 8월 14일을 세계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을 기리는 날로 정했다. 이날에는 세계 각국에서 일본군위안부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와 모임을 갖고 문화행사를 갖는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피해자 증언, 생존자 활동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윤 대표는 “위안부 문제 외에도 여성폭력 문제 등 많은 문제 속에서 여성 스스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할머니들이 몸소 보여줬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