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논쟁에 빠져서는 안 돼
결국 부메랑 되어 돌아와

이번 대선에서도 북풍이 어김없이 불었다. 북한은 대선을 꼭 1주일 앞둔 12일 장거리 로켓 을 발사했다. 발사 하루 전만 해도 우리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발사대에 세워졌던 로켓을 발사대에서 내려 해체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참으로 허를 찌른 북한다운 기습 발사였다.

당장 북한의 기습적 로켓 발사가 대선 정국의 막판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연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더구나 여론조사 공표 금지 시점(12월 13일)을 목전에 두고 북한 변수가 터졌기 때문에 이것이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됐다. “북풍은 이미 익숙한 소재로, 대선 판세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안보이슈는 여성 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여하튼 북한 변수로 인해 여야 후보의 세 불리기 경쟁 속에 혼탁·과열 양상을 보이던 대선판은 일시에 ‘안보 정국’으로 전환될 개연성이 커졌다.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안보·대북 공약과 더불어 북한 관리 능력이 주요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안보 위기’를 둘러싼 우려가 확산되면 표심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측은 일단 북한의 로켓 발사를 강력히 규탄했다. 과거 선거에서는 안보 위기가 불거지면 통상 보수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났다. 안보이슈가 평화이슈로 전환되면서 보수에게 불리하게 작동했다. 선거 막판 야당이 안보이슈를 ‘전쟁과 평화’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젊은 세대와 중도층으로부터 진보세력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10년 6월 4일 지방선거 직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보를 찍을 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 ‘4대강 사업’(21.8%)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 ‘천안함 사태’(16.3%), ‘무상급식’(12.3%), ‘세종시 논란’(6.9%),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4.4%) 순이었다. 그런데 20대의 경우는 ‘4대강 사업’(22.1%)과 ‘천안함 사태’(22.1%)가 동일한 비율로 나타났다.

2002년 대선에서도 선거 막판에 북풍이 불었다. 북한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 12일에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에서 “제네바 합의에 따라 연간 50만톤의 중유 공급 제공을 전제로 했던 핵 동결 조치를 해제하고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반미를 외쳤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안보관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이 문제를 선거 쟁점화했다. 이에 민주당은 안보를 선거에 악용하지 말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공격하는 등 날카롭게 대립했다.

2002년 대선 직후 한국선거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 핵시설 재개’ 변수는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색깔논쟁으로 끌고갈 경우 중도층에서 외면받는 역효과도 있었다. 당시에 중도층 5명 중 1명 정도(19.8%)가 지지 후보를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에 변경 전 지지 후보로 이회창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34.7%로 노무현(20.0%)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이들 계층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가 변경한 이유로 55.2%가 ‘이념과 노선이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이번 대선에 던지는 함의는 선거 막판에 불어닥친 북한 변수를 지나치게 수구 보수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면 박근혜 후보에 대한 중도층의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8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만약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다’라는 응답이 28.8%인 반면,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다는 7.4%에 불과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박근혜 후보는 북한의 로켓 발사 후 가진 포항 유세에서 “이번 대선에서 국가관이 확실한 세력을 선택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2002년 한나라당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문재인 후보를 향한 색깔논쟁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색깔논쟁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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