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는 한국 영화의 잔치였다.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 고지를 넘어섰고, 이를 동력으로 사상 최초로 1억 관객 시대를 열었다.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는 한국 영화 최초로 제6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국내 영화계 흥행작 풍년 현상에는 ‘사회고발’과 ‘첫사랑’이라는 두 가지 문화코드가 단연 눈에 띈다.
사회고발 넘어 사적 복수까지
-나는 딸을 잃고 그들을 죽였다 (돈 크라이 마미)
-사람들의 심장이 거래되고 있다 (공모자들)
-살인마도, 그가 죽인 소녀도 모두가 이웃사람 (이웃사람)
묻혀 있던 사회의 이면을 다룬 작품들은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강력범죄가 빈번해진 도시의 실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 ‘비정한 도시’,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잔인한 기록을 담은 ‘남영동 1985’, 대한민국의 역사적 상처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26년’ 등이 연이어 개봉했다. 흉흉한 현대사회를 충격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많았다.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용의자가 바로 아랫집 남자였다는 설정의 ‘이웃사람’과 장기 밀매를 소재로 한 ‘공모자들’이 그것이다.
정진욱 영화평론가는 “지난해 ‘도가니’가 흥행성은 물론 완성도도 충족할 수 있다는 성공 공식을 만든 이후 시대상을 반영하고 또 한발 앞서 사회이슈를 이끄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영화들은 관객을 피해자 입장으로 위치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범죄나 사회이슈가 만들어지게 된 역학관계를 조명하는 것을 넘어, 범죄를 단죄하고 허술한 사법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들도 있다. ‘내가 살인범이다’는 공소시효의 부당성을 알렸고, ‘돈 크라이 마미’는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한 딸을 위해 사적 복수에 나선 엄마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돈 크라이 마미’는 최근 청소년 성폭행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지만, 그중에서도 법적 처벌이 힘든 미성년자 성폭행 문제에 초점을 맞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영화들이 사회적 제도에 대한 불신이나 사적 복수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시 지펴진 첫사랑 신드롬
-세상에 없던 사랑, “영원히 지켜줄게” (늑대소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건축학개론)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심야치유식당’ 저자)는 “첫사랑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당시 순수했던 시절,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다.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늑대소년’은 여성의 첫사랑을, ‘건축학개론’은 남성의 첫사랑의 로망을 대리만족 시키며 흥행몰이를 했다. ‘건축학개론’은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첫사랑과의 재회라는 남자의 로망을 자극해 4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첫사랑 역할의 수지와 한가인의 미모는 많은 남성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여심을 제대로 잡으며 600만 관객을 넘기고 장기 흥행하고 있는 ‘늑대소년’은 늑대인간 연구 후 버림받은 늑대 소년 철수(송중기)가 소녀 순이(박보영)를 만나며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마치 애완동물을 훈련하듯 늑대소년을 가르치는 순이와, 순이의 칭찬을 받기 위해 착한 짓을 골라 하는 철수의 소소한 사랑을 아름답게 담았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송중기는 다시 한번 여성 팬의 마음을 흔든다. 순이의 ‘기다려’라는 한마디에 4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린 순애보 늑대소년은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어도 영원히 자신만을 기다리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꿈꾸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