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슭의 생(生)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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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어디쯤일까, Y는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옆이 허전하고 서늘해진 느낌에 놀라 불현듯 눈을 떴다. 그는 아주 잠깐 졸았던 것이다.

눈을 껌뻑이고 옆자리를 보았다. 성옥이가 창에 얼굴을 대고 있는데 허리를 한껏 낮춰 아이 같았다. 자신이 밖을 바라보는 걸 누군가에게 들키면 죽기라도 할 것 같은 공포심으로 쪼그라든 자세라고 할까? 하여간 그랬다. Y는 성옥이 돌려댄 등에 손을 얹고 성옥의 시선이 바라보는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거기 산허리에 쓰여 있는 하얀 구호들이 보였다.

당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 만세

………….

성옥의 등에 대었던 Y의 손이 물방울처럼 성옥의 등에서 흘러내렸다. 그는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듯 아주 작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래, 고작 북한 여자랑 살겠다고? 미친놈!

한동안 잊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성옥이와 집에 갔던 날, 어머니가 현관을 나서던 두 사람에게 뱉던 말, 성옥이도 분명 들었겠지만 그것에 대해선 입에 담지 않던 그 사람, 성옥. 지금 그 성옥이의 침묵이 피를 흘리는 날것으로 그의 기억 속에서 살아났다.

성옥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겨우 엄마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배운 노래가 있었다고 했다.

우리의 아버진 김일성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세상에 부럼 없어라

Y는 어머니를 만나고 헤어진 뒤 2주나 되었을까? 성옥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었다. 성옥은 거의 메일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의외였다.

아저씨. 북한에서는 열다섯 살쯤 되면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갑니다. 실제로 총을 쏘는데 과녁에는 승냥이로 그려진 미국인이 있어요. 거기에 총알을 쏘아 얼굴을 만신창이로 만들면 영웅도 되고 칭찬도 많이 받아요. 하지만 반대로 아주 가끔은 기절하거나 울거나 토하는 학생도, 아주 가끔 있답니다. 토한 학생 중의 하나가 성옥이었어요. 그건 미제 승냥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여야 하는 그 증오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들 몰래 아주 작은 소리로 일본말을 했어요.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절대로 밖에 나가 이런 걸 보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수용소로 간다고 두려움과 경계심을 가지고 입막음을 단속시켰어요. 어린 내게는 이런 부조화가 정신적 성장을 안팎으로 옥죄게 했던 것 같아요. 사춘기에 들어와서 나는 사회부적응의 우울한 비관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아름답던 시절을 불신과 반항과 조롱과 비관으로 살았습니다. 내가 이곳에 와야만 했던 운명이 아니었다면 혹시, 아마도 함경도의 어느 정신병원에 있을지 몰라요. 꿈을 가져야 할 때 속으로 환멸만 키웠으니까요.

당의 수뇌부에 대한 충성심과 경애심으로 충만했던 사춘기의 다른 동무들과 달리 내 가슴은 얼어붙었으니까요. 현실에 대한 불신과 부모님에 대한 경멸과 내 처지에 대한 비관과 반동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나의 성장이 뒤틀렸으니까요.

아저씨! 아저씨의 어머니를 이해합니다. 미워하지 않아요. 지금, 여러 가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적응이 어려운 것들도 너무 많지만… 잘 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지더라고요….

Y는 메일을 읽고 또 읽었지만 성옥의 마음이 제대로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성옥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한 점만 위안이고 희망이었다. 그가 성옥에게 압록강으로 가보자고 불쑥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메일에서 느껴졌던 어떤 영감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구호는 이어졌다. 모두 당과 원수님과 장군님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것들이었다. 당에서 하라면 한다는, 정작 인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결사의 구호가 산허리에 위압적이고도 순박하게 박혀 있었다.

언젠가 성옥이가 그랬던가? 아니면 열심히 탈북자 사이트에서 수기를 읽다가 본 것이었을까? 강냉이를 구걸하러 강을 건너온 북조선 사람의 가슴에 붙어 있는 초상화를 조선족이 떼어 발로 짓밟았다고 했다. 이 지경을 만든 사람을 아직도 섬기느냐고 그랬다던가? 그럴 때 그 사람은 왜 우리 수령님을 모욕하느냐, 항의했다고… Y는 그런 내용의 글을 떠올렸다.

이때였다. 성옥이 거의 빼꼼히 고개를 돌렸다. Y는 당황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옥의 눈빛, 땀을 흘리는 걸까? 눈빛이 번들거렸다.

“아이가 복스럽게 보이면 북조선에선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아기가 충성스럽게 복스럽다고 해요. 남한에선 그냥 복스럽다고 하잖아요.”

성옥이가 말했다. 웃지 않았다.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옥의 목소리와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성옥의 작은 손을 잡았다. 손이 차디찼다. 행복해야 해. 속으로 말하며 손을 비벼주었다. 체온이 전달되길 바랐다.

버스는 김형직군과 김정숙군을 지났다. 구호는 계속되고 잦아들었던 중국말 소리가 막 끓기 시작하는 풀죽처럼 띄엄띄엄 올라왔다 가라앉곤 하였다.

어디쯤에서였을까.

Y가, 성옥을 통해서 자신이 북한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고, 이해라는 건 살아보지 않고는 불가능할지 모르며, 살아보았다 해도 자기 경험 내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였다.

“야, 뭘 먹겠다고 아직 거기 붙어 있니!”

아주 낮은 고함이었다. 성옥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틀림없었다.

Y는 성옥이 아직도 제 몸을 감추듯 웅크리고 차창에 눈만 빼꼼히 내놓고 바라보는 창밖에 눈길을 주었다. 폭이 좁고 깊이도 얕아 보이는 강이 보였다.

“저것도 압록강인가?”

그가 물었다. 강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고 중국 쪽과 가까웠다. 물위로 올라온 돌을 이리저리 뛰어서 이편으로 건너기는 거의 장난일 것 같았다. 그런데도 거긴 국경을 달리한 다른 나라였다. 허가 없이 건너면 양쪽에서 모두 반기지 않는 경계. 조국 반역자가 되거나 불법 도강자가 되어 추방되는 운명의 경계치곤 너무 순박해 보였다. 구호가 사라진 농촌의 지붕은 재를 뒤집어 쓴 듯 어둡고 낡고 가난해 보였다. 그런 차림의 아낙네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배추를 씻는 아낙네도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여남은 채의 재를 뒤집어 쓴 국경의 강가 집들. 연기가 피어오르면 왠지 Y는 숙연해졌다. 강가 뒤편 높지 않은 둑길의 미루나무나 버드나무 사이로 자전거를 탄 군인이 지나갔다. 가파른 민둥산엔 추수를 끝낸 옥수수 대가 이불처럼 널렸고 그 척박한 인상의 중턱으로 구호가 지나갔다. 김정일 원수님 고맙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 위대한 김정일 원수님께서 결심하시면 우리는 무조건 한다….

구호를 보았기 때문일까? 성옥은 심장이 옥죄어드는 강박감 때문에 숨이 막혔다. 김일성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유년기,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보살핌에 근심 불안을 느끼지 못했던 아동기, 붉은 넥타이를 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소년기, 붉은 넥타이를 벗지 못해 창피하던 때, 당의 품에 들어가 네 활개 펼 수 없어 슬픔과 절망에 빠졌던 사춘기, 아버지의 반동적 성향에 분노를 쌓고 좌절했던 시절들, 미제국주의의 야만적 책동으로 배급이 줄어들고 민족의 태양이 사라지고 배급이 아주 사라지고 이웃에서 굶어 죽기 시작하고 더 이상 팔 것도 남지 않은 집, 하얀 쌀밥 한 그릇 이외엔 아무 소망도 남지 않은 아버지의 목숨, 미제국주의로부터 보내진 밀가루를 받아먹던 때, 콩나물시루라고 해도 적절하지 않은 기차에 올라타서 이동하던 때, 발길에 차이던 시체, 이가 하얗게 기어 나오기 시작하던 아사자의 모습이 바로 내일의 나라고 생각하게 되던 때, 저 강을 건너면 부자들이 산다고 하던 희망의 땅은 지척이어서, 군인과 안전부와 보위부를 피해 어둡고 차갑던 강을 건너던 때, 이리저리 팔리고 되팔리던 때, 차가운 금속 기구와 무신경한 산부인과 의사가 쑤시던 자궁의 감촉, 몽골 초원에서의 아지랑이 같던 생사(生死)의 섬세한 느낌들, 북한 사람, 빨갱이, 간첩, 의심과 적개심과 동정들… 하얀 쌀밥은 더 이상 행복이 아닐 때, 부딪쳐오던 무수한 모멸감과 따돌림….

지금 성옥은 저 건너편의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인생을 배 갈라, 속속들이 드러내 보이고 싶은 병적 충동에 사로잡혔다. 누군가 말해줘야 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 날보고 어쩌란 말인가! 내가 무릎 꿇든 네가 무릎 꿇든 하지 않고는 정신의 평화, 삶의 안정은 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성옥은 치를 떠는 자신의 내면에 기진맥진했다.

어느 결에 차창으로부터 몸을 떼어 고개를 Y의 어깨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축 처졌다. 성옥의 목숨으로 흐르는 시간들은 주검 같았다. 장백현에 이르는 먼 길, 오랜 시간 동안 성옥은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Y는 구호를 읽고 헐벗은 산을 바라보고 성옥의 하늘, 별, 하모니카 집들을 상상하고 시모노세키가 바라다보이는 모지항, 함경북도의 동쪽 바다를 마음 가득 그리고 또 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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