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답답함과 피로감만
주는 선거, 국민의 체념과 경고 새겨들어야

야권 후보 단일화가 기로에 섰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이 14일 돌연 “단일화 규칙 협상을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안철수 양측 단일화 협상 실무단이 상견례를 갖고 협의를 시작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발생한 일이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문 후보 측은 겉의 말과 속의 행동이 다르다”며 “유불리를 따져 안 후보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말고 진정으로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문 후보 측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을 때까지 단일화 협상은 당분간 중단된다”고 했다. 민주통합당 측에 의해 ‘안철수 양보론’이 조직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 협상 잠정 중단의 도화선이 된 것 같다. 그 밖에 안 후보 측 협상 실무팀에 대한 인신공격, 실무팀 구성원의 협의 내용 외 자의적 발언 등이 원인이 된 것 같다.

양측 모두 아름다운 단일화를 통한 정권 교체를 다짐했지만 단일화 룰을 도출하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하튼 현재의 야권 단일화 과정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과 닮은 점이 많다. 당시에도 ‘단일화 전격 합의’(11월 15일) 이후 ‘실무 협상타결’(17일)→ ‘여론조사 합의 내용 유출 파문’(18일)→‘정몽준 측 국민통합21 재협상 요구’(19일)→ ‘여론조사 방식 재협상’(20일)→ ‘협상 중단’(21일)→ ‘최종 합의’(22일)로 이어졌다. 도중에 협상이 중단됐고 이것을 후보의 담판으로 해결했다.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단일화 방식 협의 중단은 안 후보의 ‘승부수’로 해석하고 있다. 문 후보 측은 민주당 현역 의원과 지역 조직을 총동원해 ‘100만 정예군’ 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더구나 최근 호남 등에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조직이 열세인 안 후보가 이런 국면을 ‘바람’으로 전환해 단일화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협상 중단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지지층과 캠프 내부를 결집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 측 박선숙 본부장이 “민주당 쪽에서 단일화 정신을 해치는 발언들이 거듭 나오고 있다. 민주당 조직 전체를 동원한 세몰이도 지나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후보가 즉각 진화에 나섰다. “혹여라도 우리쪽 캠프 사람들이 부담주거나 자극하거나 또는 불편하게 한 일들이 있었다면 제가 대신해서 사과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안철수 후보 측이 문제 제기한 사항은 단일화 자체를 파기하기엔 명분이 약하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이 양측의 불신의 늪에 빠져 아름답지 못하면 단일화 이벤트는 국민 감동은커녕 오히려 국민에게 피로감만을 주는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여하튼 진통을 겪으면서 단일화 방식 협의가 더욱 공고해지고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새누리당은 이런 야권 단일화 과정에 대해 “밀실협의의 한계가 드러났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안형환 대변인은 “정치가 애들 장난이냐”며 “후보 사퇴 협상을 빨리 끝내고 국민 앞에 정정당당하게 나서라”고 촉구했다.

단일화 협상 잠정 중단을 포함해 한국 대선판을 보면서 한 방송사 개그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매회 20%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KBS 개그콘서트의 ‘어르신’ 코너다. 이 코너에서는 마을의 최고령 어르신이 나와 “소고기 먹으면 뭐하겠노?”라는 중독성 강한 말을 유행시키고 있다. 염세주의에 더해 세상을 오래 사신 어르신의 충고를 결합해 ‘소고기 먹으면 뭐하겠노?’라는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어르신이 “빌라로 이사 가면 뭐하겠노? 집들이 하겠지. 집들이 하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소고기 사 먹으면 뭐하겠노? 살다 보니 집값 올라가 아파트로 이사 가겠지. 아파트로 이사 가면 뭐하겠노? 집들이 하겠지. 집들이 하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로 이어지는 대사가 웃음을 자아낸다.

이를 현재 대선 정국에 패러디해보자. “선거하면 뭐하겠노? 새 사람이 뽑히겠지. 새 사람이 뽑히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소고기 사 먹으면 뭐하겠노? 시간이 지나면 또 선거하겠지. 선거 또 하면 뭐하겠노? 또 새 사람이 뽑히겠지. 새 사람이 뽑히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이런 반복되는 말에 누군가 “또 소고기 사 먹겠지요”라고 버럭 소리 지르면 “아니지. 선거로 사람이 바뀌어도 하나도 변한 게 없어 화가 나 소주에다 소고기 사 먹겠지”라는 대사로 이어질 수 있다.

선거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답답함과 피로감만 주면 “대선 하면 뭐하겠노?”라는 말이 국민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게 된다. 국민을 위한다는 대선 후보들은 국민의 이런 체념과 경고를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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