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극 되살리자”

추모재에는 고인의 후배인 여성국극 원로배우들도 참석했다. 김혜리 선생은 “조금앵 선생은 무대에서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시대를 풍미하셨지만, 실생활에서는 친엄마나 이모 못지않게 후배들에게 자애롭고 너그러우셨다. 후배들과 모임이 있을 때면 주머니에 사탕 하나라도 싸 가지고 와서 후배들 주머니에 일일이 넣어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여성들이 남자역까지 맡아 창과 연기, 춤을 펼치는 여성국극은 1950~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공연 장르다. 특히 여성국극이 시작된 1948년부터 최근까지 60년 이상을 남자역 배우로 무대에 선 조금앵 선생은 뛰어난 액션연기와 칼싸움 솜씨를 선보인 ‘미남’ 배우로서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팬의 부탁으로 신랑역을 맡아 가상 결혼식 사진까지 찍은 일화도 유명할 정도로 여성 팬덤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추모재는 이옥천(66) ㈔옥당국극보존회 회장과 여성주의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가 합심해 마련했다. 조금앵 선생의 뒤를 이어 현재 남자 주인공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옥천 선생은 추모재에서 여성국극 ‘콩쥐팥쥐’의 한 대목을 시연했으며, 여성국극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큐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감독 김혜정·제작 영희야 놀자)도 상영됐다.

특히 조금앵 선생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7세에 첫아이를 출산한 조 선생이 둘째 딸을 가져 8개월 된 만삭의 몸이었음에도 칼싸움 액션신을 소화했다는 내용의 인터뷰 장면이나 “배운 도둑질이라… 내가 설 때까지 (무대에) 선다”는 말은 관객들에게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성국극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자리한 만큼, 남성 중심적 국악계의 배제와 소외 속에서 사라져간 여성국극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한 논의도 벌어졌다. 여성국극 무대를 보고 팬이 되어 배우의 꿈을 키웠고, 90년대에는 여성국극 장기공연을 직접 제작하는 등 여성국극의 재기를 위해 노력해 온 탤런트 이정섭씨는 “나라에서 다른 장르의 국악처럼 국립단체나 상설극장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공연이 돼야 대중이 접할 수 있고, 여성국극인들이 힘을 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