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지지하는 가치가 페미니즘의 가치와 같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한 심기

“여성운동가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투정쟁이들… 여성학…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의 격분의 피해 사례를 총 집합한 그들의 주장 덩어리라고 생각해왔다. 이게 내 사실적인 마음이었다.”

여성학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하는 과제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종종 등장한다.

단 한 번도 여성학에 대한 평소 생각에 대해 쓰라고 요청한 적 없는데도, 학생들은 여성학에 대해 적잖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에 대한 자발적인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곤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녀’에서부터 ‘김여사, 정여사’로 이어지는 여성 희화화와 폄하가 일상화된 사회적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하기에 인터넷이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처음 만난’ 페미니즘을 수업에서 ‘다시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학생들의 당혹감은 어쩌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곤 무언가 잔뜩 공격하고 반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당혹감으로, 그리고 마지못한 동조의 분위기로 전환되는 지점에서는 어김없이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그 유명한 문구가 등장한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양성평등을 지지한다거나,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이 강력히 처벌돼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은 페미니즘이 이슈화하는 여러 주제들에 공감하고 지지하지만, 페미니스트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양가감정을 드러내는 대표적 문구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미디어의 부정적 묘사를 별 의식 없이 수용해왔기에, 다른 사람들이 혐오하는 페미니스트와 굳이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심리에 기인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지지해 온, 또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규범과 가치가 페미니즘의 가치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 하는 불편한 심기는 결국 페미니즘을 부정적이고 환멸적으로 묘사했던 그간의 미디어 담론을 덥석 믿어왔던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과도 맞닿아 있다.

“시간표의 여성학 강의를 보고, ‘그런 걸 왜 배워?’ ‘남성학은 없냐?’라며 굉장히 고까워했던 것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옆에 누군가가 물었을 때, 여성학은 남녀를 대립시키고 사회통합에 저해되는 학문으로,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페미니스트들이 현실을 과장한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성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런 느닷없는 거부반응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던 일종의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여성학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하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걸까.

한국 여성의 성평등 지수가 하위권인 108위에 머물고 있다는 기사에 일 ‘안’ 하고 정치참여 ‘안’ 하려는 한국 여성들을 성토하는 댓글들이 봇물을 이룬다. 비정규직에 저임금을 받는 여성 가구주 여성들이 줄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행복과 안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모르겠다면, 점검해 볼 일이다. 페미니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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