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옥이네 집은 어디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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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한 계절이 흘렀네, Y는 창가에 서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창가에서 바라보는 풍경 중에 이즈음 유난히 달라진 건 없었다. 길가 건너편 주택의 담장 너머 단풍나무 이파리 끝이 조금 붉어졌나? 자세히 살피면 그런 기미를 트집처럼 찾아낼 순 있었다. 그래도 한 계절이 지나간 건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날씨를 살피고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에 예민해진 건 연락을 끊은 성옥이 탓이기도 했지만 모처럼 혼신을 다해 설계한 수복지구 기념관을 마쳤기 때문이었다. 건설경기가 바닥을 친 지는 오래였다. 그래도 그가 해 온 일은 늘 작은 건축이어서 요동치는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오늘 그는 출근하자마자 양양군의 추정수 계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설계를 잘 해주어서 공사가 척척 진행되는데 한번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양식하지 않은 순 자연산 생선으로 회를 먹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도회지 사람들은 바다를 여름철에 오는 것으로 알지만 가을 바닷가의 쓸쓸한 정취도 사람을 죽인다고, 소주 한잔 걸치고 쓸쓸한 바닷가를 거닐면 시인이 따로 없다고, 추정수는 자기 말에 만족해서 유쾌하게 웃었다. 그도 웃었다.

“가봐야지요!”

Y가 말했다. 웃음을 섞었지만 목소리가 비장해서 추정수는 조금 의아스러웠다.

“기사문리 언덕에서 푸른 동해를 바라봐야지요. 바라보고 싶네요.”

Y도 어색함을 느껴 다시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오십시오. 애인하고 오시면 더욱 좋고요. 제가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그저 몸만 오시면 됩니다.”

Y의 우울과 약간의 비장함을 느낀 추정수의 대응은 차라리 황홀했다.

“고맙습니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꼭 가겠습니다.”

Y는 진심으로 말했다.

이렇게 통화를 끝내자 Y는 그리움으로 속이 아렸다. 그래서 여태 창가에 서서 한 계절이 지났나, 아득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삼팔선이 그어졌던 동쪽의 기사문리 언덕의 바닷가와 시모노세키항을 마주한 모지항의 바다를 생각했다. 함경도 앞바다와 기사문리 바다와 모지항의 바다가 모두 한 덩어리였다. 바닷속에는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고 흐르는 모래가 있고 수많은 생물들이 있을 것이었다. 오래된 침전물이며 아직 녹슬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로부터 밀려온 것들도 가라앉았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성옥을 생각하면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모든 것들이 시간에 뒤엉켜 한꺼번에 떠오를까.

그러나 지금 Y만 시달리는 건 아니었다.

성옥은 Y가 함께 살자고 한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의 감정이 진실하고 간절하다는 것도 느꼈고 믿었다. 하지만 성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택을 힘들게 하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두려운 건 거짓이 아니라 진정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힘들고 두려웠다. 함께 산다는 건 결혼이며 결혼은 아이를 낳는 일이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남한 가족의 제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과 결혼하는 일은 달랐다. 사랑은 힘이 되지만 관념 같아 피할 수 있어도 결혼은 현실이라 피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탈북한 여성 중에 남한 사람과 결혼해서 이혼하는 확률은 남한 사람들끼리의 이혼 비율보다 훨씬 높다고 했다. 최근에도 성옥의 고향 동무가 이혼했다. 연년생으로 낳은 남매는 남한 가족에게 ‘빼앗겼다’. 동무는 그게 낫다고, 절망적으로 말했었다. 성옥의 친구들이 마련한 위로의 자리에서 동무는 울지 않고 부르짖었다.

“동무들 우리 인생은 뭔가?”

“언제나 돌아갈 지 알 수 없는 저 고향 땅에서 우린 왜 반역잔가!”

“누가 우리를 반역자로 만들었나?”

“나는 두만강을 건널 때 이미 죽었다! 한 번 죽은 목숨인데 아까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누가, 무엇이 우리 운명을 이렇게 개똥으로 만들었는지 알고나 죽자!”

한 동무가 말했다. 누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러자 누가 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미국? 소련? 김일성? 남조선?

한동안 침묵이 지나갔다.

“결혼생활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뭐야?”

성옥이가 물었다.

“생활감정이 다르다! 시어머니가 웃을 때 난 못 웃는다. 왜 웃는지 모르니까.”

이혼한 동무가 말했다. 성옥은 그 말이 깊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알 것 같긴 했다.

“송충이는 송충이끼리 살아야 한다!”

“남한 남자들이 자상한 건 맞다! 북조선 남자들은 가부장적이다. 무턱대고 잘난 체한다. 여자보다 적응도 못 하고!”

이 말에 모처럼 모두 웃었다.

“어디서든 다 자기 할 탓이다. 돈만 벌면 여기보다 더 나은 데가 어디 있겠나.”

“돈 벌기 쉽나.”

“난 북조선을 혁명하는 데 목숨을 바칠 거다.”

동무들은 이런저런 말들을 했다. 동질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들 모두가 경험한 것, 전체가 하나가 되어 살아냈던 추억이 있었다. 어둡고 밝았던 추억들, 역겹고 창피한 경험도 있었다. 1990년, 배급이 조금씩 줄어들고 배급 날짜가 자꾸 뒤로 밀리는 궁핍과 곤궁이 깊어가던 때에도 그들 모두는 현재의 이런 상황이 자기 운명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1994년 7월 4일, 정오의 텔레비전 뉴스에서 수령님의 서거가 발표될 때, 대부분 무너져내릴 거라 믿었던 하늘을 쳐다보았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저 그대로였다. 그래도 지금 이런 인생이 다가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산으로 달려가 꽃을 꺾어 분향소에 바치고 엎드려 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러 눈물이 흐르지 않아 옆 사람을 경계했던 인민도 조국에 대한 반역을 상상하진 않았을 것이다. 반역은 존재의 수치였으므로. 그건 개죽음보다 나쁜 것이어서. 어버이 수령님의 교시대로 사는 것을 도덕의 이상으로 삼았으므로.

북한 사람들끼리, 고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함께 탈북한 사람들끼리, 하나원 동기들끼리 만나도 위로나 위안은 그 시간뿐이었다. 헤어져 각자 생활로 돌아가면 행복과 불행과 슬픔과 기쁨과 희망과 불안이 뒤엉키는 삶은 여전했다.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이내 낯설고 좌절할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서 안도하곤 했다.    

졸업 학년의 가을학기를 맞은 성옥은 수업이 많지 않은 오후 시간을 서울의 북동쪽에 있는 하나센터에서 강사 일로 보냈다. 여름방학 동안 연수를 받긴 했지만 아파트를 배정 받고 아직 얼떨떨한 상태에서 하나센터로 오는 탈북자를 만나는 일은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주었다. 먼지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정작 섬 같은 고립감에 존재가 얼어붙은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이 성옥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석탄을 때지 않고 나무를 때지 않아도 언제나 더운물이 나오는 열네 평짜리 아파트. 추운 마당으로 나가지 않아도 집안에서 똥오줌을 눌 수 있는 아파트. 돈만 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눈이 휭휭 돌게 산더미 같이 많은 물건들. 먹을 것과 입을 것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섬 같은 고립감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건 시간의 몫일지 몰랐다. 고난의 행군 시절 태어나 부모를 잃고 고아 꽃제비로 살다가 브로커를 만나 새 세상 남조선에 온 청년. 그는 글자를 몰랐다. 그의 나이엔 학교가 문을 열지 못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 옥수수 죽이 필요했고 옥수수 죽이 필요한 건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청년은 강사 성옥에게 남한 군대에 가서 북조선을 무찌르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광고가 화려한 여성잡지에서 남성복 광고를 찍은 남한 배우를 선망했다. 한국에서 반드시 돈을 벌어 이런 남자가 되겠다고 열에 들떠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희망을 말할 때 성옥은 속으로 고여드는 눈물을 느꼈다. 한국 드라마에서 본 주택이나 아파트, 그리고 연애에 대한 환상은 탈북한 20대 여성에게도 같았다. 그는 친절하고 자상하고 돈 많은 남한 남자를 원했다. 그가 줄 선물, 그가 화려하고 꿈 같은 청혼을 해 줄, 그런 드라마 장면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배정받은 아파트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살다가 아무렇게나 떠난 낡고 썰렁한 공간의 외로움이 현실임을 곧 깨닫게 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됐다. 벽 하나 사이에 사람이 살고 있어도 눈인사를 나눌 수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옆집에 삽니다, 말하면 억양 때문에, 입성 때문에 검열 당하듯 아래위로 훑어보는 경멸의 시선을 세례처럼 받았다.

성옥은 선망의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두려움과 기대에 달뜬 그들에게 다만 ‘자기 할 탓’이다, 이곳은 자유의 땅이며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개척해서 살 수 있는 진정한 자유, 진정한 주체적 삶이 기다린다고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떠나온 땅의 주체성은 김일성의 주체성을 따르는 것이지만 이곳 자유의 땅에서는 진짜 자신의 주체성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업이 끝나도 수강생들은 성옥이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성옥은 그들의 불안한 눈길에서 서둘러 등을 돌렸다. 밀려드는 자괴감 때문에 순진한 불안과 희망의 눈길에서 도망가야 했다. 누구에게 ‘희망’을 말한단 말인가, 희망이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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