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후보 모두 양성평등 비전 제로” 비판
여성복지 공약-성평등 공약 차별화해야
“분노하지 않는 여성 유권자도 문제” 지적도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각 후보를 막론하고 업그레이드 된 ‘여성’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여성공약은 경제민주화, 복지, 청년실업, 가계부채에 이르기까지 쟁점으로 떠오른 이슈들에 파묻혀 경선 당시 제시한 수준에 멈춘 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출산, 보육, 일자리 문제에 여성을 대입한 여성 맞춤복지 공약과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해 성별격차를 해소하는 여성공약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여성계에선 “이제부터는 ‘여성공약’이란 말을 폐기하고 대신 ‘성평등’이나 ‘성인지’ 공약이란 말을 쓰자”는 논의도 일고 있지만 여성 유권자들이 이런 표현을 생소해할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대로 된 여성공약이 빈곤할수록 국정 운영에서의 성평등 철학이 그만큼 빈곤해진다는 사실이다. 김은희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여성복지 공약과 성평등 정신에 근거한 젠더(gender) 공약은 엄연히 다르다. 현재 젠더공약은 각 후보가 거의 전무한 상태”라며 “일회성 행사에서 나온 후보들의 여성 관련 발언을 공약으로 보기도 힘들다”고 지적한다.

10월 18일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당내 경선을 겨냥해 지난 7월 대대적으로 발표한 여성공약 외에 별다른 추가 공약을 내놓고 있지 않다. 당시 박 후보는 여성 관리직 일자리 확대 등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아빠의 1개월 출산휴가, 맞벌이 부부를 위한 방과 후 돌봄 서비스, 저소득층 자녀 수에 따른 세액 공제, 임신 기간 중 근로시간 단축 등 주로 일·가정 양립에 초점을 맞춘 보육복지 공약을 제시했다. 대선 후보들 중 출마 선언문에 유일하게 ‘남녀의 실질적 평등’이란 문구를 넣어 기대를 모았던 문 후보 역시 여성경제활동참가율, 노후보장 안전권, (성폭력 범죄 시) 친고죄 폐지에 이르기까지 박 후보에 비해 좀 더 다양하게 여성공약의 내용을 채웠지만 최근엔 각계각층 여성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여성 1인 가구 주거권과 미혼모 지원 강화 등을 언급한 것 외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경우, 최근 7가지 정책비전(정치, 경제, 교육, 청년, 노인, 환경, 남북관계)을 발표했는데, 이 중 ‘여성’ 혹은 ‘성평등’ 분야는 제외됐다. 단지 ‘청년’ 부분에서 “부담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를 전제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답을 내겠다는 복지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했을 뿐이다.

세 후보 캠프 측은 새로운 여성공약을 다듬고 있어 11월이 되기 전 2차로 좀 더 구체화된 내용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을 아끼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측은 여성계가 먼저 연대해 각 캠프에 공약 압박을 가하는 선제적 전략을, 한국여성단체연합 측에선 여성 어젠다의 우선순위를 합의해 후보 측에 제시할 것을 고민 중이다.

한편에선 “분노하지 않는” 여성 유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정치세력화가 돼 표심 파워를 발휘하지 않는데 후보 측에서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일례로 최근 박근혜 후보가 군가산점제 부활을 거론하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잇단 여성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는데도 여성들의 반발이 생각만큼 거세지 않고, 박 후보의 지지율도 빠지지 않았다.

10월 말 여성 유권자의 표심 행태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인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여성들은 자기 권리에 대해 민감하게 투표하지 않는 성향”이라며 후보에 대해서도 “정책 중심적이라기보다는 인물 지향적”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정수장학회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대선 이슈로 대두돼 더욱 여성정책 이슈가 실종됐다는 평이다.

10월 18일 현재 각 후보 캠프의 여성 전문가 인력풀은 제한적이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선 박 후보 자신이 공약위원장을 겸하는 가운데 여성정책연구원장을 역임한 김태현 성신여대 교수가 여성본부장으로, 역시 여성정책연구원 출신인 민현주 국회의원이 여성특보로 활동 중이다.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우, 여성민우회 대표 출신인 김상희 국회의원이 여성위원장으로, 김인선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이사장, 초대 성폭력상담소장을 역임한 최영애 여성인권을지원하는사람들 대표이사가 정책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 캠프는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여성포럼 대표로 여성학자인 이미경 전 성폭력상담소장이 참여하고 있다.

여성계는 “여성정책이야말로 통합가치인 만큼 진보와 보수, 여야를 떠나 각 캠프의 여성 전문가들이 연대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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