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의료인 취업 제한하는 ‘의료법’ 있지만
간호조무사는 ‘의료인’ 아니라 취업 막을 길 없어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의료기관 취업을 제한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일반 시민들이 동네 의원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간호조무사는 취업 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일 60대 여성이 입원 중에 병원에서 자신을 성폭행한 남성 간호조무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본지 1207호 보도). 지난해 11월 청주에서도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을 유인해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하려 한 간호조무사 서모(35)씨도 강간미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일이 있었다.

이렇듯 간호조무사들의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들이 성폭행을 저지른 직후 다른 의료기관에 재취업하는 것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

현재 성범죄 의료인의 의료기관 취업 제한 내용을 담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에 따라 의료인을 고용할 때 과거 성범죄 여부를 조회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나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진료나 간호업무를 보조하는 간호조무사는 취업 금지 대상이 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의료인 성범죄자 취업 제한 개정법의 유권해석을 보면 의료인은 ‘의료법’ 제2조에 따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로 분류된다. 즉,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에 속하지 않아 의료기관 취업 금지 대상이 아니다. 현재 일정 기간 학원을 다니고 실습을 하면 취득할 수 있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은 시·도 등 자치단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자격증 등록제가 아니기 때문에 간호조무사협회 등에서 간호조무사의 성범죄 경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는 10만9610명. 이 중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간호조무사(2만937명)는 간호사(8만4898명)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가장 많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수는 5만5694명으로 간호사(1만3734명)보다 4배나 많다.

이에 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간호조무사도 환자의 치료를 돕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관리돼야 한다”며 “자격증을 면허제로 변경하고, 복지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것으로 알려졌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을 총괄하는 여성가족부 김병천 사무관은 “간호조무사도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의료법 개정 등으로 의료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형태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간호조무사협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간호계 입장은 상반된다. 백찬기 대한간호사협회 홍보국장은 “의료법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법령인 ‘간호조무사 및 의료 유사업자에 관한 규칙’에서는 간호조무사 업무에 진료보조 업무를 포함하고 있어 문제가 생기고 있다”면서 “정부가 1973년부터 간호조무사 관리를 민간 사설 학원에 맡기면서, 현재 54만 명에 달하는 간호조무사 인력의 윤리교육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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