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사실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는 정치인 아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지난해 문 후보가 일종의 참여정부 회고록 성격을 띤 에세이 ‘운명’을 출간한 후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꼭 일 년 만에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이후 빠른 속도로 대선 가도에 적응해가고 있다. “(남편과 달리) 이 길이 나에겐 아직 ‘운명’이라 말할 순 없지만”이란 전제를 붙이는 그이지만 대선 후보 부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지난 8월 ‘어쩌면 퍼스트레이디’란 부제를 단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를 펴내 적극적으로 남편을 외곽 지원하고 있다.
다음은 10일 오후 정동의 한 야외 카페에서 진행된 그와의 일문일답.
안철수 후보에 대한 남편의 ‘선의의 경쟁’ 신념 믿어
-대선이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정치는 잘 모르니 내일 걱정은 접어두고 최선을 다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음을 비우는 연습부터 한다(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서울시립합창단에서 노래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요즘 ‘청산에 살리라’는 우리 가곡을 즐겨 부른다고 한다. 자연 회귀의 노랫말에 위로를 받곤 한다). 지난번 책을 낸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그의 책은 일반적인 자전적 에세이의 성격을 벗어나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가수 이은미, 영화감독 임순례 등 ‘희망 꿈 행복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 경청한 얘기들을 담았다). 사람에게 다가갈 때 내 생각을 미리 가지고 가면 사람의 마음을 못 읽는다는 체험을 한 것이다. 남편의 선거운동 지원 중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 분야라 생각하다보니, 그 분야에 계신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그분들이 감사하게도 다른 인터뷰에선 좀체 말씀하시지 않던 속 깊은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정치인 아내로 ‘입문’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원래 낯가림이 좀 있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를 선뜻 내주기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날 이렇게까지 낮추는데 잘 안 받아주면 어쩌지’란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다가가는 것을 체득했다. 결론은, 스스로 나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다. 여기에 책무감도 더해졌다.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1위 전승을 하면서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실감했고, 우리에게 정권 교체의 희망을 거는 분들을 통해 희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이젠 이 상황을 피할 수 없고, 일단 시작했으면 반드시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문 후보와 주로 어떤 대화를 하는지.
“사실 요즘 같아선 대화하기가 참 힘들다. 남편은 홍보팀이 작성해준 연설문도 일일이 검토하고 자신이 다시 첨삭하는 스타일이라 집에 와서도 예전 자료를 다시 찾고 또 암기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난 그저 ‘먼지같이’ 산다(웃음). 집에서만큼은 휴식이 먼저인 남편을 위해 가장 가까이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그러면서도 가장 가볍게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비 퍼스트레이디 후보로서 현장에서 어떤 여성들을 만나고, 어떤 얘기들을 들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주로 만나는 여성들은 요양원의 노인들, 다문화가정 여성들, 쪽방촌 사람들 등 소외된 분들이다. 여성단체 관계자들도 만났다. 그러면서 여성 일자리 문제와 사회안전망 문제가 시급함을 절감했다.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결혼하고 싶어도 불안감 때문에 결혼을 망설인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당장 내 딸만 하더라도 육아문제가 힘들어 멀쩡한 직장을 포기해야 했다. 또 치매 문제만큼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런저런 현장 얘기를 남편에게 ‘보고’하곤 하는데, 남편도 메모를 하면서 때론 이를 정책실에 보내기도 한다.
남편은 페미니스트다. 부산에 내려가 변호사 활동을 할 때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았었다. 남편은 변호사를 멀게만 생각하는 그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교육하고 상담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성문제를 체득했을 것이다. 여성 관련 법률에 대해 법률가로서 강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여성 고민 남편에게 ‘보고’…아동성폭력·노인·다문화가정에 큰 관심
-캠프에서 PI(대통령 이미지)로 ‘대한민국 남자’를 정했다가 여성계의 반발로 바로 철회한 해프닝이 있었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이북에서 피란 와 아버님이 돌아가신 상태에서 기댈 곳 하나 없이 어머님과 함께 가족을 살리려 고군분투해온 장남의 헌신과 책임감, 또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대도 가고 민주화 운동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역할들을 다 하면서 떳떳하게 살고자 해 왔다는 것, 이제 이런 책무감을 가지고 대선 후보로 나섰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지난번 경선을 앞두고 열린 한 방송사의 토론회에서 문 후보가 자신을 ‘문불출’로 규정하며 “난 김정숙씨의 남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해 인상적이었다.
“나도 사십대 중반에 급기야 ‘재인씨, 존경해요’라고 고백했다. 친구들이 이 얘기를 듣고 다 놀라더라(웃음). 남편과 20대 초반에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학생운동으로 남편이 구금되는 힘든 상황을 거쳐 변호사가 돼 생활의 변화도 겪고 하면서 우린 격동의 시기를 함께 해왔다. 남편은 한결같이 원칙을 고수해왔고, 이 원칙의 엄격한 폭이 지금까지도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는데, 왜 그런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이 일관성에는 감탄한다(그는 말끝에 요즘 부쩍 늘어난 새치에 주변에서 염색을 권하고 자신도 부분 염색이라도 하라고 권하자 남편이 “사람들과 만날 때 염색은 안 한다고 해서 염색 할 수 없다”고 답한 얘기를 전하면서 “말에 대한 책임감이 그 정도여서 어떤 때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공인으로서의 태도가 엄중한 것만큼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육아로 너무 힘들어 하면서도 ‘너는 하늘에서 구름 타고 사느냐’는 남편의 말 때문에 가사도우미 한 번 못 쓰고 허덕였었다. 신분상승 욕망이 강했다거나 어려웠던 삶을 변화시키려고 했다면 결코 그렇게 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엔 포도주, 케이크, 꽃은 빠뜨리지 않는 남편이다. 일 때문에 자정을 넘겨 들어와도 이것만은 잊지 않는다(웃음).”
-안철수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논의가 일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단일화 문제를 말할 때마다 남편은 안 후보를 거론하며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곤 하는데, 안 후보 측에선 단일화를 말할 때 남편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다. 내가 이 점을 지적하며 안타까워 하면 남편은 ‘그분이 흠집 나면 나도 흠집이 나는 거다. 서로 보조를 맞춰 서로 상처를 안 주고 계속 가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남편은 ‘선의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이희호 여사, 권양숙 여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조언을 들었나.
“이 여사님은 ‘사람들을 방문할 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분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눈길도 한 번 더 주라’고 말씀하셨다. 권 여사님은 ‘주위 조언을 경청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라’고 하셨다. 다 고마운 말씀들이다.”
-퍼스트레이디가 되면 꼭 하고 싶은 일은.
“구체적으론 아동 성폭력, 다문화 가정,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 힘을 보태고 싶다. 책을 내면서 각계 인사를 만났는데, 그분들이 강조하는 것은 대중과의 소통과 자기 계발이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단절돼 있어 위험하다’며 힐링과 어려운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를 역설했다. 나 역시 공감한다.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소통의 연결고리&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