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을 위해 산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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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그런데 뭘 기념하느냐고? Y는 성옥을 등진 채 전기포트의 물을 연잎이 담긴 우윳빛 머그잔에 부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이거 좋은 차야. 특히 여자한테 좋다던가?”

그가 의자를 끌어다 성옥이 앞에 놓고 마주 앉으며 말했다. 성옥은 잔을 코에 대고 향기를 맡았다. 연잎이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다른 말을 했다.

“사실 난 이런 거 잘 몰라요. 차를 마셔보지 않아서요. 그런데 왜 여자한테 좋아요?”

성옥이가 말끄러미 그를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씩 웃었다.

“혹시 아이 낳을 때 좋을까?”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성옥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런 변화를 못 보았다.

“여자와 남자가 다른 건 아이 낳는 것 한 가지니까.”

그는 이렇게 못 박기까지 했다. 성옥은 고개를 숙이고 무심한 듯 끄덕였다. 잔에 다시 물을 부어 연잎차를 우려낸 사람은 여자인 성옥이가 아니라 Y였다.

“마셔. 성옥이도 아이를 낳겠지.”

그가 말했다. 그저 일반적으로, 아무 뜻도 없이 한 말이었다. 그러나 성옥은 얼굴이 아니라 몸속부터 화끈 달아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다급한 목소리로 화장실을 물었다. 말로 하지 않고 앞장서서 문까지 열어준 Y를 성옥은 거칠게 밀어내고 안에서 찰칵 소리 나게 걸었다. 문밖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을 때면 절망감을 느끼곤 하던 Y는 여자거니, 여자들은 화장실 가는 걸 부끄러워하거니 여겼다. 성옥이가 그에게 절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걸, 지금 그가 그것을 기억하게 했다는 걸 상상할 순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성옥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토했어?”

그가 물었다. 성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내 아니라고, 속은 편하다고 바꿔 말했다.

“다행이네.”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전원이 켜진 컴퓨터를 바라보며 야근을 생각했다. 밤샘을 해야 일정을 맞출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성옥이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저 고개 숙인 채 말이 없는 성옥을 바라보며 그는 막연하게 상상했다. 이 여자와 함께 산다면….

그가 이런 상상을 할 때,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오직 전류 흐르는 소리만 들릴 때, 닫힌 창틈으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목청을 돋운 취객의 소리가 들릴 때, 아래 층 바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올 때, 그는 여전히 성옥이와 살까, 생각하고 있을 때, 성옥이가 말했다.

“통일 되면 통일 기념관도 지으세요.”

낮고 음울하고 젖은 목소리였다. 순간 Y는 자신도 모르게 성옥이 앞에 앉았다. 맨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두 손을 성옥의 허벅지에 얹었다. 당황한 성옥이가 울음이 매달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팔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Y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머리를 성옥의 다리 사이에 얹었다. 그의 더부룩한 머리털 위로 성옥의 한숨이 길고 길게 흘러내렸다. 한동안 그랬다. 두 사람의 기이한 모습은 숨 쉬는 정물화 같았다.

“통일을 생각하는구나.”

그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더부룩한 머리털 속으로 손가락을 넣고 살며시 움직이던 성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Y가 이민족 같다고 느꼈다. 같은 민족이라면 이렇게 질문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성옥은 그의 더부룩한 머리털 속에 든 자신의 손가락을 거두진 않았다. 이민족 같다는 건, 가끔 성옥이도 느끼는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치체제가 다른 곳에서 나고 자란 단일민족은 문화적으로 총체적 모순덩어리였다. 생활감정도 낱낱이 부딪쳤다. 그것이 때로 공포심을 자아내게 했다. 탈북자들끼리 만나 이런 불협화음을 이야기할 때,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도달하는 희망의 시간과 공간은 언제나 ‘통일’이었다. 고향을 함경도라고 말하지 못하고 강원도라고 속이고 서울 말씨를 녹음해서 듣고 다니며 익히는 동안 성옥은 행복하지 않았었다.

“통일 기념관을 내가 설계한다면 얼마나 영광일까.”

Y가 잠꼬대처럼 말했다. 그 말소리는 공기를 타고 위로 퍼졌다.

“그럼 그 속에 내 인생도 넣어줘요.”

성옥이가 말했다. 비장해서 위로 퍼지지 못하고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래서였을까? Y가 고개를 들었다. 속눈썹이 젖어보였다. 성옥은 그의 눈길을 피했다.

“설마, 혜교 때문에 돌아가고 싶어진 건 아냐?”

Y는 이렇게 물으며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어서 모멸감이 모질게 짙었다.

“나는 못 가요.”

“그래, 못 가야지. 가면 난 어떡하라고.”

Y가 말하고 일어섰다. 성옥은 고개를 더 깊이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는 가방을 챙겨서 들고 불을 하나씩 껐다. 어둠 속에서 성옥은 여전한 정물이었다. 그가 성옥을 달랑 들었다.

“가자.”

그가 말하고 더운 입술을 성옥의 입에 댔다. 성옥의 입술은 젖은 꽃잎처럼 벌어져 있었다.

“가지 마. 내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지.”

그가 입술을 떼고 중얼거렸다. 성옥의 얼굴이 눈물로 젖어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가 성옥의 허리를 뜨겁게 휘감았다. 택시를 타고 그의 오피스텔로 들어갈 때도 그는 사무실을 나올 때처럼 휘어 감고 입술을 포개고 또 들어 안았다. 이 모든 그의 행동에 대해 성옥은 거부하지 않았다. 성옥은 마치 없는 사람 같았다. 연길의 술집 거리, 깊은 산골 흙집의 말 못하던 사내, 입덧과 임신중절, 마취제가 없어서 그 고통을 죄악처럼 각인하던 시간들에 대해 성옥은 Y라는 남자 밑에서 주섬주섬 추슬렀다.

성옥의 맨살을 어루만지며 Y는 여자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가 여성을 성욕으로 경험하게 되었던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성옥에 이르기까지 셀 수가 없었다. 결혼했던 아내와는 연애를 할 때 더 많이 겹쳐지곤 했었다. 성욕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시들었다. 신혼이라는 짧은 한 시절을 빼곤 그랬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성옥은 그가 경험한 어떤 여자와도 달랐다. 그는 그 느낌을 물질화하고 싶었다. 선으로, 면으로, 입체로.

성옥은 그를 바라보며 모로 누워 있었다. 그가 성옥의 허리선을 손가락으로 그리듯 여러 차례 지나가고 허리와 가슴과 머리와 목덜미, 뺨, 귓밥까지 그렇게 하는 동안에도 그저 숨만 쉬고 있었다. 혜교가 생각나지 않아서 좋았다. 냉정하던 울분을 풀고 동생을 받아들여 지금 언니와 행복하게 사는 이모를 생각하지 않아서 좋았다. 압록강 강둑에 와서 통화를 기다리는 엄마, 지금 줄 돈이 모자란다고 말해야 하는 것도 잊어서 좋았다. 더 이상 엄마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차라리 엄마가 이리 와라, 말해도 듣지 않으면서 돈만 요구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서 좋았다. 서러워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 모든 상황이 이해할 수 없어서 혼란스럽던 것, 기억나지 않아서 좋았다.

“성옥아. 너 혹시 나를 만나려고 여기 온 거 아닐까?”

갑자기 Y가 물었다. 느닷없었다. 그러나 장난이 아니라는 걸 성옥은 느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같이 살아야겠어. 적어도 통일 될 때까지.”

그가 말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성옥을 더듬던, 성옥을 그리던, 성옥을 재던 손가락을 치우고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 있었다. 그는 마치 천장을 두고 맹세하는 것 같았다. 천장에다가 방금 그가 한 말을 새기는 것 같았다. 그 위에, 그것을 넘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성옥은 귀가 윙 해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무슨 중요한 말을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웃자고 한 말인지, 미안해서 얼버무리는 말인지, 명료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가 성옥의 알몸 위로 자신의 알몸을 들어 올려놓았다.

“아름답지?”

그가 뜨겁게 물었다. 성옥은 대답할 수 없었다. 무슨 까닭인지 콧날이 시큰하더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편하지?”

Y가 성옥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문질러 닦으며 나직하게 물었다. 순간 성옥의 몸이 파도를 가르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처럼 솟구쳤다. 솟구쳐서 Y의 몸과 하나가 되었다. 몸이 기뻐했다. 눈물 속에서 웃음이 고여 오르고 있었다. 약속은 없어도 좋다고 성옥의 마음이 생각했다. 살아 있어서 좋을 뿐이라고 성옥의 몸과 마음이 동시에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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