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을 위해 산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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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성옥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북한으로 갔다는 거야? 이렇게 묻던 Y의 목소리는 귀에 설었고 냉정하게 들렸다. 그게 가능하냐고 확인하던 화난 목소리는 더 무서웠다. 그런데도 울음이 복받쳤다. 정말 서러운 건지, 섭섭한 건지, 무서운 건지, 성옥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고 눈시울에 힘을 주려 애를 쓸수록 가슴이 쓰라렸다.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생각에 잠겼고 서로를 잊었던 것 같았다. 거의 5분이나 서로를 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혹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 몰랐다.

“배가 고프다. 밥 먹자. 먹어야 살지?”

Y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성옥이 느리게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바로 눈앞에 마주 보였다. 순간 성옥은 신기하다는 느낌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웃음이 감도는 성옥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두어 개 떨어져 내렸다. Y가 일어섰다. 엉거주춤 따라 일어서던 성옥이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커피 잔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Y가 성옥의 팔을 휘어잡았다.

거리로 나온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음식들의 이름을 서로 말했다. 결국 성옥이가 맛있어 하는 개성만두집으로 갔다. 만두전골을 주문했다. Y는 조금 망설이다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술이 먼저 식탁에 놓였다. 그는 뚜껑을 비틀어 열고서 두 개의 유리잔에 하얀 술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말도 없이 혼자 잔을 들어 한 모금에 홀짝 들이켜고 빈 잔을 내려놓았다. 성옥의 놀란 눈이 그를 응시했다. 그에겐 성옥의 놀란 눈 저편으로 사무실에 펼쳐놓고 나온 도면들과 아직 채 완성하지 못한 도면들이 어른거렸다. 그는 술잔에 술을 채웠다. 때때로 자신이 술, 그 자체였으면 할 때가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술이 데려가는 다른 정신세계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불화를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도망치는 상상만 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어머니는 공포감과 수치심 때문에 아버지를 싫어했다. 그리고 Y는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아무 힘도 없는 무기질 같은, 혹은 비무장지대 같은 피붙이였다. 그들과 헤어져도 헤어져지지 않는 유전자의 결합을 느끼는 일은 그에게 지옥이었다. 그 지옥은 Y가 중학교 1학년 때 이혼으로 결판이 났다. 외가의 유산과 어머니의 장사 수완으로 집안은 홀가분하고 여유롭고 짐짓 평화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Y는 아들로서 어머니 몰래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다른 남동생이 생기기 전까지였다. 이혼율이 높은 이즈음 이런 사연은 상처도 아닐지 몰랐다. 그러나 Y는 일부러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성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술이 담긴 세 번째의 잔을 빼앗아 자기 앞에 놓고 손을 떼지 않는 여자 성옥을 바라보며 Y는 웃었다.

“가고 싶어?”

그가 웃음이 간지럼처럼 번진 입으로 성옥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두 잔의 소주로는 아직 그의 창백한 얼굴에 취기가 찾아오지 않았다. 성옥이가 그를 갸우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눈이 이렇게 물었다. 설마…. 그러다가 알아차렸다.

“내가 어떻게 가요. 수용소에 가려고, 가요?”

성옥이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마침 휴대용 가스버너와 전골냄비가 식탁에 놓였다. 반찬들도 얹혔다. 물김치에서 풍기는 신 내는 싱싱했다. 먹을 것 마주한 성옥은 방금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런 건 다 잊은 표정이었다. 싱싱한 물김치는 고향의 창고에서 겨우내 퍼 먹던 함경도식 김치맛을 기억하게 했다. 국물이 국처럼 많던 김장김치. 어머니의 김치 솜씨는 인민반에서 소문이 났었다. 저녁이 짧은 겨울, 별이 빼곡하게 뜨도록 창고에서 놀다가 항아리 뚜껑을 열고 무청을 꺼내서 질겅질겅 씹어 먹던 기억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 혜교가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그 몸으로 압록강이나 건널까. 돈을 주면 다 된다니 차로 들어갈까. 성옥은 끓기 시작하는 전골냄비에 주걱을 넣고 뒤적이며 생각했다. 문득 문득 주걱을 쥔 손이 냄비 속에서 정신을 잃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만두 다 터뜨리는 거 아냐?”

Y가 말했다. 성옥이 정신을 차렸다. 주걱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무엇을 찾았다. 찾아낸 모니터를 Y에게 내밀었다.                      

“성옥아, 잘 살아♡ 통일 되면 고향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금복아. 사랑♡♡♡한다. 명숙이가.”

성옥은 자신의 원래 이름이 금복이고 혜교의 원래 이름은 명숙이라고 말했다. 성옥이의 그런 말이 Y에겐 들리지 않았다. 시한부 삶을 선고 받고 무작정 고향으로 떠났다는 그 여자의 진심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집에 가지도 못할 거예요.”

성옥이가 그릇에 전골을 덜어 놓으며 남 말 하듯 툭 뱉었다.

“그건 모르잖아. 그런데 가면 잘 거기서 받아줄까?”

“우린 다 죽은 거로 되어있을 거예요. 모르죠 뭐. 돈을 많이 가져갈 거니까 돈 때문에 대접받을지. 어디 가서 남한 욕하는 강연하고 살지.”

성옥은 여전히 말을 뱉었다. 하지만 두 병째의 소주를 나눠 마시고 식당을 나서서 지나가는 사람이 툭툭 걸리는 거리에 섰을 때, Y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년이 부러워요. 질투가 나서 잠이 안 와요.”

“그렇구나.”

Y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가락 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성옥의 손을 잡아 만져주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했다. 손가락의 얼음은 조금씩 물리고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그래도 손을 만져주었다. 성옥을 바래다줄까? 집으로 데려갈까? 혼자 생각했다.

“미칠 것 같아. 한국에 왜 자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죠? 하지만 탈북자가 더 많이 자살해요. 한국에선 자살하면 그거로 끝인데 북한에선 반역죄에 해당해요.”

성옥이가 Y에게 기대다가 몸을 바깥쪽으로 떼다가, 보폭을 넓혔다가 문득 멈췄다가 하면서 혼자 말했다. Y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그걸 결정하는 게 그의 문제였다.

그는 곧 문제를 해결했다.    

“내 사무실로 가자. 내가 요즘 하는 일을 보여줄게.”

그가 말했다. 성옥은 거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몇 분 후에 사무실로 올라갔다. 불이 꺼진 텅 빈 사무실이었다. 그가 잠긴 사무실  문을 열고 등 뒤의 성옥을 먼저 들여보냈다. 성옥이 안으로 들어가 막 문을 닫는 그에게 쓰러지듯 안겼다. 그는 작은 성옥을 품에 꼭 안았다. 성옥은 졸음이 몰려드는 걸 느꼈다. 천국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금 성옥은 잠자고 싶었다. 다시 깨어나지 않아도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Y가 팔의 힘을 풀었을 때 성옥을 짓누르던 잠기운은 사라졌다.

Y는 사무실에 붉을 밝혔다. 성옥은 여기저기 구경했다. 그러다가 우드록으로 만든 하얀 모형 앞에서 Y를 불렀다.

“이거 너무 귀여워요! 이런 데선 누가 살아요?”

성옥이가 큰소리로 말했다. Y는 책상 위에 널린 어지러운 서류와 도면들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성옥을 바라보았다.

“이런 데선 누가 살아요?”

성옥이가 곁에 다가선 그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대답이 없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하얀 우드록의 단층 건물 모형도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누구…, 그랬다. 누구였다. 성옥이의 어깨에 얹은 손에 스며드는 여린 체온을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이 환하게 깨쳐졌다. 수복지구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는 그저 강 건너의 불구경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대답을 간절히 바라며 자신을 돌아보는 성옥에게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어깨에 얹힌 손으로 토닥거리며 마음을 전했다.

그가 처음 이 일을 맡고 삼팔선이 그어진 기사문리와 이승만, 김일성으로 나뉜 땅, 양양의 이곳저곳으로 실사를 다닐 때도 지금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담당 공무원이 설명하던 비밀스럽지만 이미 먼 그 일들은 어쨌든 다 지나간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모두 살아있는 인생이라는 느낌이 든 것이었다. 그 이야기와 성옥의 삶이 따로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간 인생들이 사는 집이야.”

그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뒤늦은 대답을 했다. 여전히 모형을 바라보던 성옥이가 의혹이 밴 시선으로 그를 휙 돌아보았다.

“그럼 귀신이 살겠네요.”

성옥이가 말했다. 그는 픽 웃으려다 그렇게 못 했다. 뒤미처 섬뜩한 느낌이 소름처럼 끼쳐서였다. 정말 귀신이 살아요? 이렇게 귀여운 집에? 성옥의 시선은 여전히 묻고, 그는 성옥의 아이 같은 상상력이 터무니없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감추고 싶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을 귀신이라 이름 붙였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그는 자신의 책상 앞으로 성옥의 등을 밀었다. 성옥은 도면들을 한 장씩 들어보며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도면을 그릴 때 손끝에서, 심장에서 느껴지던 성옥에 대한 감정을 기억했다. 그리고 불현듯 무언가를 알 것 같았다. 여기에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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