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멘토링 토크 콘서트서 특별공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돕는 ‘이야기 해주세요’ 음반 참여

 

한국을 대표하는 블루스 보컬리스트 강허달림(38·본명 강경순·사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타 하나 둘러메고 무작정 상경한 그는 한국 블루스를 대표하는 밴드 신촌블루스의 보컬을 거치며 ‘한국 블루스계의 디바’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나는 가수다’의 차기 주자로 거론될 만큼의 실력자이지만 “죽어도 유명해질 수 없는” 가수라는 한 문화평론가의 평처럼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한 가요계의 비주류이기도 하다. “왕따들에게만 인기 있는 가수다”라는 자평과 함께 보여준 강허달림의 미소는 슬픔 가운데 희망과 위로를 선보이는 그의 음악과 닮아 있다.

-여성신문이 주최하는 멘토링 콘서트 ‘신나는 언니들’ 무대에 선다.

“음악을 하기 위해 열아홉 살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월급 30만원이 안 되는 곳에서 경리로 일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도 겪으면서 나만의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어떤 문화예술인이 되고 싶은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자신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나도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

-최근 여성 인디 뮤지션들과 함께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은 프로젝트 앨범 ‘이야기해주세요’에 참여했다.

“실은 어제(17일) 생전 처음으로 광주 나눔의 집에 다녀왔다. 앨범에 참여했던 송은지, 정민아, 소히, 시와 등과 함께였다. 다른 뮤지션들은 이 앨범을 위해 신곡을 선보였는데, 나는 6월 단독 공연 일정과 겹쳐 경순 감독의 영화 ‘레드마리아’에 수록했던 곡을 내놨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앨범이 나온 후의 일정에 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대중적인 공감대를 확대시켜야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 진득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보여주기 식의 단발성 행사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 스스로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동료의식이 더 돈독해졌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여자가 음악을 한다는 것. 신인 시기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어떻게 생존하느냐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런 어려운 시기를 거쳐 버텨낸 동지로서 서로 응원해주고 칭찬해주는 시간이었다.”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많이 했다. 페미니스트 밴드 마고로 데뷔한 이력과 부모 성을 함께 쓴 예명이 강경한 느낌도 있다.

“음악에 특별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하지는 않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알려지며 ‘21세기 아침이슬’이라고 알려진 ‘미안해요’ 같은 경우는 ‘찌질한’ 이별 가사에 불과했다. 단지 무언가 진취적인 희망, 긍정의 힘을 찾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NGO 단체에서 섭외가 많았고, 그런 현장에 다니다 보니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음악밖에 몰랐던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발매한 2집 ‘넌 나의 바다’에 대한 평이 엇갈린다. 첫 정규앨범 ‘기다림 설레임’에서 보여준 진한 블루스 색채가 옅어져 ‘심심하다’는 평도 있고 ‘성장했다’는 칭찬도 있다.

“나 스스로도 1, 2집의 색깔이 너무 달라 어떤 것이 진짜 ‘강허달림의 음악’인가 하는 고민이 많다. 이번 앨범에서는 내 본연의 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깔끔한 음색을 선보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음악이 밝고 경쾌해져 ‘사랑에 빠진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아주 좋은 분과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음악이 연애 때문에 변한 것은 아니다. 사실 주변 사람들 덕이 컸다. 1집은 혼자 고립되어 만들었다면, 2집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위안과 격려로 만들었다. 워낙 엉뚱하면서도 긍정적인 성격인데,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온 것 같다.”

-데뷔 14년차의 중견이다. 여전히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솔직히 말하면 리듬감은 조금 타고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에 자만한 적은 없다.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성 연습이나 박자 감각 익히기 같은 기본기를 지금도 꾸준히 연마한다. 몸이라는 것은 금방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름을 딴 독립 레이블 ‘런뮤직’을 통해 앨범의 작사와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과 홍보, 마케팅까지 혼자 하고 있다.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솔로 앨범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매번 어그러졌다. 이 바닥에 10년 넘게 있다 보니 업계의 순환구조가 읽히는데, 눈치를 보아하니 기다리기만 해서는 한도 없겠더라. 그래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작비를 지원 받아 음반을 제작했다. 곡도 굳이 내가 쓸 생각은 없었는데 사람들이 안 써줘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웃음)”

-정말 긍정적인 성격인가 보다.  어려운 과정을 이렇게 밝게 이야기하다니.

“사실 음악에 뛰어든 때부터 어느 한 순간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인 때가 없었다. 신문 배달부터 청소까지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외의 시간에 음악을 해야 했으니 항상 세심하게 일 년, 한 달, 하루 단위의 계획을 세우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음악을 안 했으면 사회생활을 어찌 했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산만하고 대책 없이 긍정적이다.”

-팬이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도와주고 있다고 들었다.

“인복은 타고났나 보다. 매니저는 생업을 따로 하고 있어서 내 스케줄을 모두 관리해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스케줄 정리나 공연의 기획이나 홍보를 도와주는 등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사람도 완전 좋다.”

-팬클럽 ‘달달이 패밀리’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공식적인 매니저는 따로 있지만, 달달이 패밀리의 한분 한분이 모두 개인 매니저 역할을 해주신다. 음반을 대량으로 구매해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입소문도 내주시고, 직접 공연을 열어준 적도 있다. 특히 진선미 국회의원과 이상엽 우림건설 실장은 정신적인 멘토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10월에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지난 6월 마포에서 큰 콘서트를 한 번 했는데, 400~500석 무대에 서다가 큰 무대로 옮기니 버거운 느낌까지 들더라. 공연장의 크기가 대수는 아니다 싶어서, 다시 예전처럼 관객의 눈을 가까이서 마주볼 수 있는 공연을 마련했다. 광주(11일)나 부산(26일)의 공연은 기획자가 나섰는데, 제주도(13일)는 기획자가 없어 또 내가 스스로 기획한다. 공연이 열릴 제주문예회관은 200석 규모인데, 제주에서 200석을 유료 관객으로 채우는 것은 서울에서 2000석을 채우는 것과 맞먹는다더라. 제주는 한없이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느낌이라 언젠가 귀촌해 살고 싶을 정도로 동경하는 도시다. 잘 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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