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 여성의 마음을 끌어당길 문(門)은 어디에

16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의 서울지역 순회경선을 끝으로 민주통합당은 문재인 후보를 대선주자로 ‘선택’했다. 지난 8월 제주에서 시작된 한 달여의 지역 순회경선 끝에 13회 전승을 기록, 이미 문 후보의 승리가 예감된 상황이었다. 총 108만 명 규모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최종 투표율 56.69%, 투표수 61만4257표 가운데 문 후보는 총 득표율 56.52%를 기록하며 34만7183표를 얻어 누적투표율 과반을 넘긴 끝에 결선투표를 생략하고 본선으로 직행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지난 대구·경북 경선까지 종합 50.8%에 그쳐 결선투표 가능성이 제기됐던 상황에서 경기·서울 지역으로 오면서 종합득표율을 6%나 끌어올려 수도권 강세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안철수 대선주자에 이어 줄곧 부동의 3위를 지킨 대중성과 모바일 투표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됐다는 중평이다. 

문 후보에 이어 손학규 후보는 13만6205표(22.17%)로 2위, 김두관 후보는 8만7842표(14.3%)로 3위, 정세균 후보는 4만3027표(7%)로 4위를 기록했다.

“다섯 개의 문”에서 제외된 ‘양성평등’, 두고두고 아쉬워

연설문 앞머리를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변화를 선택하셨습니다”로 시작한 그는 “변화의 새 시대”란 키워드를 끌어내 이를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로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그의 슬로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의 전제라는 것. 그는 자신의 대선 공약의 큰 틀로 “다섯 개의 문”을 통해 제시했다. “일자리 혁명,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새로운 정치, 평화와 공존의 문” 중 그가 가장 강조한 ‘문’은 일자리. “일자리가 민생이고, 성장이고, 복지”라는 전제 아래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서 직접 챙기고, 지방 일자리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공약을 했다. 일자리 중에서도 가장 강점을 두는 부분은 청년실업 문제 해결. 이를 위해 앞의 국가일자리위원회에 ‘청년일자리특별위원회’를 따로 설치할 계획이다. 복지정책에선 보편적 복지 원칙을 분명히 했고, 경제민주화 공약에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재벌 관련 제도 정비를 강조했다. 새로운 정치분야에선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 지방분권시대, 균형인사를 내걸었다. 또 “평화가 경제이며 새로운 성장동력”이라며 경제분야에서의 남북 협력을 통한 통일을 지향, ‘30-80 국가’를 선언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8000만의 한반도 시장을 바탕으로 한국을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4번째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 향후 계획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북한 인사 초청, 임기 첫해에 남북정상회담 추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와 6자회담 복원을 밝혔다. 

한편, 16일 현재 장외 대선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의식한 날선 견제도 엿보인다. 문 후보는 “지금 정치권 밖에서 희망을 찾는 국민이 적지 않다”며 이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라 규정하면서 “저와 우리 민주통합당이 반성해야 할 대목”으로 꼽았다. 그가 제시한 ‘책임총리제’ 역시 경선 초기 안철수 원장을 의식해 제안했던 공동정부와 맥을 같이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수락 연설문에서 양성평등이란 시대정신과 ‘여성’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 부분은 의외라는 평가다. 그는 연설문에서 만연한 범죄, 무력한 치안이라는 문제의식 속에 여성·아동 안전권만을 잠깐 언급했을 뿐이다. ‘일자리’ 공약에서도 비정규직의 절대다수인 여성 대신 청년을 강조했다. 6월 출마 선언문에 가사·육아·돌봄노동의 여성 전담 관습에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 여성 대선주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넣지 않은 “남녀의 실질적 평등”이란 문구를 삽입한 것과는 대조적 현상이다. 더구나 지난 7월 ‘대한민국 남자’를 PI(Presidential Identity·대통령 이미지)로 공표, 여성계의 따끔한 지적 속에 가부장성 논란을 일으키며 PI를 급히 철회한 해프닝을 돌이켜볼 때 이를 만회할 좋은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들려온다. 특히 야권의 강력한 경쟁자 안철수 원장에 대한 여성 지지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락 연설문에서부터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크게 끌어당길 전략이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인다. 이에 대해 캠프 관계자는 “기존에 발표한 여성공약을 분야별로 세분화, 진일보한 방향으로 업데이트 중”이라며 곧 윤곽을 드러낼 문 후보의 여성공약에선 ‘일자리’와 ‘안전권’에 대한 주목할 만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18일 현재 문 후보는 경선의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한 방송사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양자대결에선 박근혜 후보를, 다자대결에선 안 원장을 지지율 면에서 처음으로 앞선 결과가 나왔다. 17~18일 전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양자대결에서 문 후보의 지지율은 47.1%를 기록했다. 박 후보(44.0%)와 겨루어 오차범위(±2.5%포인트) 내에서 앞선 결과다. 다자대결에선 26.1%의 지지율로 안철수 원장(22.5%)을 제치고 박 후보(38.6%)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안 원장과의 양자대결에선 44.9%의 지지도를 기록, 안 원장의 32.3%의 지지도와 12.6%포인트의 격차를 벌려놓았다.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 배경엔 박 후보의 역사인식 논란과 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던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이에 따른 탈당 여파, 그리고 안 원장의 출마선언 지연으로 인한 피로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19일 공식 출마선언을 한 안 원장의 행보에 따라 지지율의 광폭 변화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정치학자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안철수에게 지지율은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며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보다는 경제 회생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커서 그의 지지율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은 실례를 꼽았다. 김 교수는 “안철수의 핵심 지지층은 ‘새로움’을 열망하는 ‘40대 수도권 무당파 화이트칼라’로 이는 상대 박근혜나 문재인 후보보다 지지층 면에서 더 견고하다”고 지적한다. 심리학자 황상민 연세대 교수도 “강력한 대선주자 박근혜 후보의 특별한 가족 배경이나 전형적인 정치인 이미지와 가장 극명히 대비되는 참신한 정치인에게 국민의 마음이 쏠리게 마련”이라며 안 원장의 경쟁력을 문 후보보다 우위에 두었다.  

스스로를 ‘힐링 대통령’으로 규정하는 문재인 후보가 이 같은 메커니즘을 어떻게 극복해가며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우위에서 대선을 치러나갈지 첨예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18일 첫 윤곽을 드러낸 문 후보의 대선기획단 ‘담쟁이 기획단’(가칭)은 상대 박근혜, 안철수 후보를 다분히 의식, ‘수평적 구조’와 ‘국민 소통’을 중심에 두고 꾸려지고 있다. 특히 그가 수락 연설문에서 당내 통합을 염두에 두고 제시한 ‘용광로 선대위’답게 ‘친노’ 색깔을 약화시키거나 지우려 한 의도도 보인다. 기획단엔 따로 단장을 두지 않고 참여 인사 모두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1차 인선 결과 ‘여성’과 ‘대중성’ 면에서 박영선 의원, 지역주의 타파 면에서 김부겸 전 의원, 시민사회 대표성 면에서 이학영 의원, 경선캠프 ‘담쟁이 캠프’ 선대본부장으로서 보여준 추진력과 안정감 면에서 노영민 의원 등 당내 인사 4명이 기획위원으로 선임됐다. 조만간 합류할 당외 인사 2명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안철수 원장을 겨냥해 선대위 산하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반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한 ‘시민캠프’를 꾸릴 계획인데, 캠프 관계자는 이는 “문 후보가 연설문에서 밝힌 대로 시민들의 소통과 참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