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성폭력 피해 수기 낸 은수연씨 “아버지가 아니라 악마였다”
친족성폭력 피해 수기 낸 은수연씨 “아버지가 아니라 악마였다”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2.09.07 12:47
  • 수정 2012-09-07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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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목사인 친부가 성폭력
초등 6학년 때 낙태수술
수능 전날까지 가혹한 매질

“성폭력은 영혼의 살인… ‘성’의 문제 아닌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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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난나
“9년 동안 친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하면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어요. 제 외침은 ‘커밍 아웃’이 아니라 ‘스피크 아웃’입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8월 30일 저녁, 서울 도심의 한 카페에서 은수연(가명)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 1학년까지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동반한 성폭력을 당한 은씨는 최근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이매진)를 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된 친족성폭력 피해자 수기다. 부제는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좋아하는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폭력과 맞서 당당히 살아남은 생존자인 것이다.

은씨는 친아버지의 강간으로 낙태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임신 12주가 넘은 상태로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그녀는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나주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이 터진 후 은씨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아이가 단순히 생존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마음으로 응원했으면 한다”고.

은씨는 대학 1학년 때 강제로 여관에 끌려갔다가 “납치됐다”며 주인에게 구조 요청을 해 경찰서로 도망쳤다. 세 번째 탈출 시도였다. 경찰 조사 이후 아버지가 구속되면서 9년간의 악몽은 막을 내렸다. 친족 성폭력에 대해 친고죄를 폐지한 ‘성폭력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피해자 고소 없이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7년 넘게 복역한 후 출소했다. 출소 한 달 전 아버지를 찾아간 은씨는 말했다. “난 당신이 망가뜨리려고 했지만 망가지지 않았고, 더럽히려고 했지만 더렵혀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외동딸은 애완용품에 불과했다. 은씨는 “그 사람의 침대는 성폭력 형틀 같았다”고 했다. 항문섹스와 애니멀섹스를 강요하고, 강제로 성인극장에 끌고 갔다. 아버지란 이름의 가해자는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협박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좋은 ‘목사 아빠’인 줄로만 알았다.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아버지는 교문 앞에서 그를 ‘낚아챘다’. 은씨는 기자에게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자율학습 한 번 못 받았죠. 친구들과 떡볶이집도 못 갔어요. 그래서 지금도 떡볶이를 좋아하나 봐요.” 아버지는 하굣길의 딸을 학교 근처 여인숙에 데려가기도 했다. 수능 전날에는 호텔에서 성폭력을 하려다 얼굴을 찡그리자 벌거벗은 딸을 허리띠로 채찍질하듯 가혹하게 매질했다. “우린 부부”라며 “외국에 나가 내 아이를 낳고 살면 돼”라는 터무니없는 말도 했다. 지옥 같은 9년이었다.

은씨는 아버지가 만든 ‘고문실’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집에 끌려간 뒤에는 혹독한 매질을 당했다. “새벽녘에 성폭력을 당하다 잠자려고 입은 옷 그대로 뛰쳐나온 적도 있어요. 미친 듯 도망치다 결국 붙잡혔어요. 시골에서 모내기가 막 끝났을 땐데 차가운 논바닥에 빠진 날 끌어내 각목으로 마구 때리더니 시멘트길에 쓰러진 내 얼굴을 구둣발로 밟았죠. 그때 그 사람 등 뒤로 보이던 별을 보며 ‘저 별만큼 그 사람과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랐지요.”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겁에 질려 딸을 돕지 못했다. 목장갑을 끼고 발가벗겨 손발을 묶은 후 각목으로 패던 남편을 막을 힘이 없었다. ‘엄마는 왜 아빠를 말리지 못했느냐’는 딸의 물음에 “나도 죽을 것 같았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화해를 했지만 지병을 앓던 어머니는 50세 때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때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은씨는 “이젠 딸과 엄마로 제대로 살아보려 했는데…”라며 속울음을 삼켰다. “엄마 역시 불쌍한 피해자죠. 친족성폭력 피해를 당한 기간이 길다고 ‘이상한 사람들 아니냐’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말아줬으면 해요. 피해 생존자들이야말로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니까요.”

아버지의 폭력은 가족을 해체시켰다. 남동생이 “집에 산 느낌이 안 들었다. 책가방을 내려놓았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했을 정도다.

아버지가 칼로 벤 상처로 고름이 맺혔지만 새살도 돋았다. 낮에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밤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전화상담을 했다. 이후 상담소 활동가로 일했다. 은씨는 “처음에는 나만 이런 일을 당한 줄 알았다. 상담을 해보니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은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더라”고 했다. 집단상담부터 치유 글쓰기, 사이코드라마 워크숍까지 마음의 치유에도 집중했다. 수기가 나오기까진 10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다세대 옥탑방에서 피를 토하듯 글을 썼다. “어느 순간 후드득 말이 쏟아졌어요. 세상을 향해 내가 겪은 상처를 말하고 싶어졌죠.”

은씨의 수기는 성폭력 생존자가 다른 생존자에게 건네는 위무의 편지다. 가족을 고발하는 용기는 사실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다른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무거운 짐이다. “피해자 중에는 순하고 착한 여성들이 많아요. 친족성폭력을 ‘성’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수치심을 느껴 말하기 힘들어하죠. 하지만 정작 수치심을 느껴야 할 사람은 가해자들입니다. 성폭력은 영혼의 살인입니다. 우리가 겪은 문제는 ‘폭력’의 문제이지, ‘성’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은씨는 “이제는 수치심을 많이 벗었다. 가해자인 아빠에게 ‘수치심 종합선물세트를 돌려드린다’는 한마디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선가 숨죽이며 살아갈 여성들이 현실을 체념하지 말고 용기를 냈으면 해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이듯 자신의 문제를 보듬어줄 빛나는 친구들을 만나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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