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가족 에고이즘으로 자식 잘못 ‘뒷설거지’ 역할

 

모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영화 ‘마더’의 도준 엄마는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괴물이 돼 간다.
모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영화 ‘마더’의 도준 엄마는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괴물이 돼 간다.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고려대 의대생 배모(26·복역 중)씨와 그의 어머니 서모(52)씨가 피해 여학생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8월 22일 피해 여학생이 인격장애가 있다는 허위 문서를 꾸며 동료 의대생들에게 배포한 혐의(명예훼손)로 추가 기소된 배씨와 불구속 기소된 서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서씨는 이날 재판 직후 법정구속됐다.

엄마와 자식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지만 삐뚤어진 모정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최근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가해자 엄마가 “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니다” “피해자가 자극한 것”이라며 자식을 감싸는 일이 잇따르자 왜곡된 모성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백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부모 입장에서 명문대 의대에 다니고 엘리트로 큰 자식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상당수의 가해자 부모가 쫓아와 합의해달라고 요구한다”며 “잘못된 가족주의에 빠져 잘못을 바로잡기보다 감싸주는 문화가 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서씨의 모습은 영화 ‘마더’의 도준 엄마를 연상시킨다. 모성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도준 엄마(김혜자 분)는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으며 괴물이 돼 간다. 아들 대신 정신장애를 가진 청년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자, 엄마는 청년을 붙잡고 울부짖는다. “넌 엄마가 없니, 엄마가 없어?”

김정명신 전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공동대표는 “가정에 고립돼 있으면서 자식의 성취를 성공의 징표로 생각하는 엄마들이 많다. 자연스러운 모성을 넘어 자식이 도구화되는 단계까지 갔다”며 “도준 엄마처럼 내 아이가 절대적으로 옳다, 피해를 받으면 안 된다, 온전히 보호해줘야 한다는 집념이 왜곡된 모성으로 나타난다. 내 자식도 실수할 수 있는데 일차적으로 부정한다. 온갖 편법을 저지르며 자식 잘못을 ‘뒷설거지’한다”고 말했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경쟁체제가 엄마를 가족 에고이즘에 빠지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 전 대표는 “대학입시라는 블랙홀 때문에 엄마들의 집착이 더 심해졌다”며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 가운데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리기 전 폭력 가해 학생인 자식을 전학시켜버리는 사례가 있다. 성폭행 가해자가 ‘봉사를 많이 했다’는 추천서로 성균관대에 합격한 데서 알 수 있듯 양심에 어긋난 일은 못하게 하는 자정 노력이 가정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은숙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한국 엄마들은 딸과 며느리를 대하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내 자식이 중요하면 남의 자식도 중요한데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엄마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교육 격차가 심해져 이른바 ‘스카이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입학하려면 부모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가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관행이 부끄럽고 뻔뻔한 행동을 낳은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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