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숙씨가 담담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대사를 낭독하자 객석은 이내 울음바다가 된다.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기획된 연극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연출 유승희)의 공연 현장이다.
작품은 선생이 생전 인터뷰에서도 “일생 가장 큰 슬픔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는 아들의 죽음을 바탕으로 허구를 더해 쓴 자전적 소설이다. 한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을 통해 겪게 되는 가치관의 변화와 그 속에 내재된 인간 내면의 모습을 그려낸 명작이다.
박완서 선생의 장녀인 호원숙 수필가는 “이 작품은 소설이면서도 소설이 아니고 그냥 그대로 어머니의 목소리다. 어머니의 고백록이기도 하고 같은 아픔을 겪은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헌사이기도 하다”며 “개인의 아픔과 함께 시대가 많은 아픔을 같이 앓아주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꼭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이 작품을 꼽아왔던 손숙씨는 소설 속 어머니의 모습을 현재의 우리 어머니 이야기로 치환해 깊은 울림을 준다. 손숙씨는 “한때 문학 소녀였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문학에 대한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내게 박완서 선생은 늘 희망의 끈이었다. ‘박완서 선생님도 마흔이 넘어 문단에 나오셨는데 나도 아직 가능성이 있어’라면서 등단을 꿈꾸기도 했다”며 “작품의 내용이 워낙 처절하고 문장의 향기가 워낙 높아서 가능하면 연극적 장치를 줄이고 낭송하듯 담담하게 연기하고자 했다. 아들을 잃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도 이 연극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돌보며 사는 동창생을 방문해 억눌려 있던 서러움이 폭발하는 듯한 울음을 봇물처럼 터뜨리는 장면은 연극의 백미다. 이 눈물은 그들의 비참한 형편을 동정해서가 아니다. “다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모자의 모습이 그렇게 부럽더라.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고백에서 보듯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깊은 상실감과 큰 슬픔 때문이다. 손윗동서를 ‘통곡의 벽’ 삼아 말을 쏟아 놓는 주인공의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하다.
연극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23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문의 02-3272-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