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근무 계속하면 ‘암’ 걸린다”
“밤 근무 계속하면 ‘암’ 걸린다”
  • 박길자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2.08.24 13:00
  • 수정 2012-08-24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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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되면 ‘멘붕’… “사고 걱정”
“불임·유산 겪는 여성 많아”
15년 교대근무 심근경색 2배
국제암연구소, 발암 요인 지정

 

22일 저녁 9시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유통업 종사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는 오전 10시〜오후 9시, 백화점은 오전 10시〜오후 7시로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일요일·공휴일은 휴업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22일 저녁 9시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유통업 종사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는 오전 10시〜오후 9시, 백화점은 오전 10시〜오후 7시로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일요일·공휴일은 휴업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야간 노동을 많이 하는 여성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24시간 생체리듬이 파괴될 뿐 아니라 여성호르몬 주기가 깨져 생식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유산과 조산, 저체중아 출산 위험이 커지고 심근경색과 유방암 발병률도 높아져 건강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반도체 조립 회사인 A사에서 20년 넘게 일한 정용미(가명)씨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가 재발돼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주변에선 “야간 노동 때문에 유방암에 걸렸다”며 산업재해 신청을 권했다. 이 회사는 4조3교대제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나이트’ 근무를 한다. A사 노동조합 이인자 지회장은 “몇 년 전엔 한 달씩 야간 노동을 했다. 한 명이 기계 40〜50대를 보는데 밤새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미쳐서 일한다’고들 말한다”며 “유방암뿐 아니라 다른 암도 종종 발병한다. 불임이나 유산을 겪는 여성들도 많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인 이수영(가명)씨는 “한 달에 밤번 근무를 8, 9일씩 할 때 석 달 정도 생리가 끊겼다”며 “스트레스성 위궤양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불면증, 만성피로를 겪는 동료도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침 6〜7시면 멘붕(멘탈 붕괴) 상태라 에러(사고)가 늘 두렵다”고 했다.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교대근무가 2〜3년만 돼도 위궤양과 수면장애, 우울증이 나타난다”며 “장기적으로는 심근경색과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진다. 여성 노동자들이 15년 이상 교대근무를 하면 심근경색 발병 가능성이 2배 올라간다. 보통 만40세 이후 교대근무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덴마크 정부는 장기간 야간 노동으로 발병한 유방암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야간 노동이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유엔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잠자는 패턴의 변화가 체내의 멜라토닌 생산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교대근무를 발암 요인으로 분류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터의 ‘밤일’은 일상적인 풍경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여성 임금노동자의 6.6〜11.6%(34만~62만 명)가 야간작업 종사자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힘든 일터에선 밤샘 노동이 유독 심하다. 대학병원의 한 내과의사는 임신 7개월에도 새벽 서너 시까지 나이트 근무를 했다. 출산한 지 1년 미만인 여성들도 강압에 못 이겨 밤새 일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보건의료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자산업이나 자동차제조업, 유통서비스업, 음식숙박업 등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야간 노동으로 건강을 해친다.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사이에선 “야간 노동을 하면 유산이나 불임을 겪는다. 결혼하려면 퇴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당연히 평균 근속연수도 짧다. 김현주 단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야간 노동을 마친 후 집안일과 육아 부담을 지므로 건강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근로시간 단축과 불필요한 야간 노동을 금지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이 야간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임금 때문이다. 표준근무시간(오전 7시〜오후 7시)으론 먹고살기 힘들어서다. 근로시간 단축이 임금 삭감 없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야간 노동의 폐해가 알려지면서 고용노동부는 야간작업 종사자의 특수건강검진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야간 노동을 하면 한두 시간이라도 휴식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인아 교수는 “야간 노동이 불가피한 사업장에선 근무시간이라도 줄여야 한다”며 “‘야간 노동을 하면 죽을 수도 있다’ ‘임금이 조금 깎여도 여성 건강을 위해 밤엔 쉬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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