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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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Y는 후쿠오카에서 돌아온 이후 한동안 성옥이를 만나지 않았다. 그가 돌아오던 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했던 성옥이도 웬일인지 잠잠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하루도, 한나절도 성옥을 잊은 적이 없었다. 도면을 들여다보다가 서류를 살피다가 책을 읽다가 밥을 먹다가 차를 마시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거리를 걷다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모든 등을 끄고 자리에 눕다가 어떤 기미에 정신을 차리면, 거기 성옥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리움, 혹은 애절함 같은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성옥은 늘 거기 있는 산이나 강이나 골짜기나 개울이나 숲처럼 있어도 보이지 않고 안 보아도 있다는 걸 믿게 된, 자연일지 몰랐다.

맨 처음 Y에게 성옥은 조금 남다른 데가 느껴지는 여자였다. 북한 여자라는 걸 알았을 땐 흥미로웠다. 그리고 때때로 다른 점이 감지될 땐 막막했다. 서로 다르기로 말하자면 서양 사람이나 중동 사람, 아프리카 사람만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옥이에게서 느끼는 이질감은 ‘다르다’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그는 때때로 그 무엇인가가 주는 부담감을 감당하기 싫다고, 기지개를 켜며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 성옥은 Y의 모든 갈등과 의문의 와중에도 그의 곁에 있었다. 산처럼 골짜기처럼 강처럼 숲처럼, 성옥은 그의 자연이 된 것 같았다.

어느 주중의 하루, 수경이란 여자와 저녁 약속을 한 건 성옥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였을까?

Y는 약속보다 거의 8분이나 일찍 수경이가 정한 장소에 갔다. 조명은 은은하고 실내는 우아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한껏 굳었고 심지어 화가 난 표정이 얼룩처럼 번졌다.

8분에서 5분을, 그는 자신이 정한 숙제의 과제물을 정리하는 데 썼다.

1) 할아버지는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2) 왜 아들을 데려가려 했나?

3) 그곳에서 행복했나?

4) 갈 수 있다면 갈 것인가?

5) 이곳에서 자유를 얻지 않았나? 이곳에서 얻은 것 중에 가장 갚진 것. 좋은 것.

Y는 5번 문제에서 조금 헤맸다. 이곳에서 자유를 얻지 않았나? 하고 썼다가 그 뒤에 가장 값진 것, 그리고 좋은 것에 대해 묻고 ‘혹은 나쁜 것’이라고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눈앞에 생긴 그늘 때문이었다. 그늘의 기미에 고개를 들자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수경이가 보였다. 

“중요한 걸 하셨나 봐요.”

수경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는 메모장을 가방에 넣었다. 방해한 것 같아요, 수경이 중얼거리며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수경의 연한 보라색 원피스 자락을 바라보았다. 여자란 자신에게 늘 미궁 같다고 생각했다. 성옥을 만났을 땐 들지 않던 생각이었다. 

“바쁘신가 봐요. 일본에 다녀오셨다는 말 들었어요. 어머님께.”

수경이가 말했다. Y는 조금 놀랐다.

“우리 어머니가 그랬습니까?”

수경은 긍정의 의미로 웃어 보였다. Y는 아주 드문 경우긴 하지만 이럴 때 어머니가 싫었다. 그가 어머니에 대한 불쾌감에 빠져 있는 동안 수경은 이 집이 맘에 드느냐, 우리 고모부의 동생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음식점은 주인을 알고 있으면 좋은 것 같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데려오라고, 좋은 와인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세련되어 보이는 종업원이 다가왔을 때, 수경은 메뉴를 Y에게 건네며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싫어하는 것이 없다, 다 좋다, 이런 말로 빠져나왔다. 수경은 최선을 다해 음식을 주문하고 와인도 정했다.

“요즘도 시를 쓰십니까?”

그가 물었다. 수경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짢은 표정이 어른대다가 곧 지워졌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모국어의 빈곤을 느끼신다고….”

“네. 언어가 감정을 다 표현하게 해 주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언어의 빈곤을 느껴요.”

수경의 답변은 단호했지만 Y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종업원이 잔에 와인을 따르고 인사하고 돌아섰다.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대화는 시에서 건축으로 다시 영화로 이어졌다. 대화가 끊기고 둘 사이에 빈틈 같은 침묵이 생기면 수경은 불편했다. 음식 접시가 비어갈 때쯤, 그리고 와인 병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수경이가 물었다. 결혼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한 번 결혼했었고 그 경험에서 자신의 적성이 결혼생활에 잘 맞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현재는 혼자 지내고 싶다… 그의 눈매엔 취기가 어렸지만 대답은 사뭇 진지했다.

“혼자 지내고 싶으세요…?”

수경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불현듯 Y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속을 썩인 적은 없는 아들이지만 다 큰 자식이 때때로 남같이 느껴진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 애에겐 단단한 여자가 필요하다, 잡아줘야 한다, 같은 말들.

수경이 그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잠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고여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수경은 남편이 될지 모르는 건축가 남자의 향후 인생을 상상했고 Y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를 흔드는 ‘그리움’을 감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기 앞의 접시에서 느리게 고기를 잘라 입에 넣고 가지나 단호박 따위를 칼질해서 먹었다.

“건축가를 좋아했어요.”

음식 접시들이 치워진 뒤에 수경이가 공연히 축축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Y가 수경을 쳐다보았다.

“집을 짓잖아요. 그 안엔 사람이 살고요. 집은 자연 속에 있고요.”

수경이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Y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그렇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예술 같아요.”

수경이가 말했다. Y가 아래로 내린 시선을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가 말했다. 수경의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눈동자도 빠르게 구르다가 멈췄다. 왜? 왜 하필 고맙지요? 수경은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 사무적인 태도의 남자에게서 또 다른 실망을 맛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사이에 곤혹스런 침묵이 생겼다.

“시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까?”

Y가 물었다. 곧 후회했다. 말이나 되는 질문인가, 그는 자신을 비웃었다.

“문학하고 건축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집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문학은… 화제가 재미없네요.”

수경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요!”

두 사람이 식당의 정문에 섰을 때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Y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수경의 목소리는 여태까지와는 달리 단호했다.

“훌륭한 식사였습니다.”

누가 먼저 돌아서야 할지 몰랐던 걸까? Y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또 봬요.”

수경이 인사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조금 더 식당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Y가 어머니로부터 수경에 대한 전화를 받은 건 집에 도착하자마자였다.

“너 여자 있다며?”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막무가내였다.

“누가 그래요?”

그가 어눌하게 물었다.

“어떤 여자야?”

어머니는 여전했다.

“수경씨가 그랬어요?”

“그게 중요하니?”

그는 어머니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그게 알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없어요!”

그가 모범 답안을 발표하는 학생처럼 말했다.

“그으래?”

“네.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는 없다고요.”

그가 말했다. 어머니 쪽에서 침묵이 밀려왔다. 그는 피로를 느꼈다.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여자는 있고?”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저를 괴롭히는 게 즐거우세요?”

“내가 할 말이야 이 녀석아!”

“때가 되면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엄마한테 데려갈게요.”

그가 말했다.

“수경인 아주 포기냐?”

“좋은 여자인 것 같은데 맘이 내키진 않네요.”

“왜!”

“그냥 내 맘이 그래요.”

“다른 데 맘이 가 있으니 그렇지!”

그는 어머니의 이런 말까지 듣다가, 그만 자야 한다, 요즘 회사가 바쁘다, 말하고 전화를 끊고 전원까지 껐다. 그 순간적 암전으로부터 그는 자욱하게 밀려오는 슬픔을 느꼈다. 그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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