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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없다.”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가정에서 배운다.”

가정이 학교를 대신해 교육을 책임지는 이른바 ‘가정학교운동

(Homeschooling)’이 일고 있다.

대안교육이라는 점에서는‘대안학교’와 같지만, ‘가정학교’는

부모들이 스스로 교육자가 되어 집에서 자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을 말한다.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은 학력·학벌 중심의

사회에서 획일적 교육,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무한경쟁 속에 아이들

을 내모는 학교 교육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 70년대

공교육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미국, 영국 등지에서 시작된 가정

학교(Homeschooling)운동은 현재 미국내 1백만 명이 넘는 아이들과

영국내 1만여 가정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7년부터 몇몇 가정의 가정학교 사례가 언론에 소개

돼 왔는데, 얼마전 그런 부모들이 모여 ‘가정학교 모임’(가칭) 을

만들었다.

지난 2월 20일에 첫 모임을 시작한 ‘가정학교모임’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가정학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

‘가정학교모임’

용인에 살고 있는 김창복(43) 씨는 지난 달 모임에 처음 참석했다.

그에겐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에 다니는 아들, 딸이 있고, 그 위로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않고 있는 딸이 있다. 대안

학교를 보낼 생각도 해 봤지만 가까운 곳에는 없어, 생활기반을 버

리고 떠나기도 쉽지 않아 가정학교를 생각하게 되었단다. 잘못된 교

육구조 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던 딸은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낫다며 지금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딸을 보며 앞으

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얻고

싶어 이 모임을 찾게 됐다고.

그밖에 ‘가정학교모임’엔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김순필 씨, 일산

에 사는 네 아이의 엄마 이현옥 씨(40), 번역 일을 하면서 딸 하나를

키우는 이수영 씨,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관심이 있어 찾아온 19

살의 윤희나 양, 대안학교에 관심이 있다는 미혼의 최윤아 씨, 그리

고 언론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경기도 포천에서 아홉 명의 아이들

을 가정교육하고 있는‘작은 누리’의 박형규 씨 부부 등 다양한 사

람들이 함께 한다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명학 씨(35). 그는 4살, 7살난 자녀

가 있어 곧 가정학교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그래

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조만간 그만두고 본격적인 가정학교운

동을 할 계획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기는 학

교, 아무 보장없이 벼랑으로 모는 교육제도 때문에 가정학교운동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가정학교를 하는 가정은 주변에서 이상한 사

람 취급을 당하기 쉽다. 그래서 ‘가정학교모임’은 이들에겐 기본

적으로 정신적인 지지집단 역할을 한다. 앞으로 정보와 교육방법 공

유, 소식지 발행, 출판 사업, 법적인 문제 등 연대할 수 있는 방법들

을 모색중이다.

이 모임에서는 몇몇 가정의 사례를 발표하기도 하지만, 가정학교의

특별한 모델이 있는 건 아니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이들마

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공부를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하느냐

를 정하는 데는 아이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정훈이’의 가정학교

‘가정학교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광선 씨는 12살짜리 아들 정

훈이를 2개월 전부터 집에서 교육하고 있다. 지난해 4학년까지 학교

를 보냈다가 정훈이가 원해 시작하게 됐다고.

김광선 씨는 미국에서 영재교육, 학습장애 전공 특수교육학 박사학

위를 받았고, 현재 파라다이스그룹 복지재단 장애아자료연구소 소장

을 맡고 있다.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아들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 못했어

요. 파행적인 제도권교육의 문제, 부작용에 대해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죠. 그런데 이제 바로 내 아이의 문제가 된 거예요. 홈스쿨링(가정

학교) 방법이나 프로그램을 마련할 때 루돌프 슈타이너의 '발도르

프교육'에 기본을 둡니다.‘머리와 가슴과 손’, 즉 생각·감정·행

동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거죠. 현재 교육은 너무 머리만

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김광선 씨 부부는 정훈이에게 목표량을 정해놓고 다그치는 교육이

아니라, 관심있는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오랫동안 다룰 수 있도

록 한다. 예를 들면 주말 농장에서 식물재배나 자연을 관찰하고, 정

훈이가 좋아하는 만화로 관찰한 것을 정리하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목이다. 그 또래에 맞는 기본적인 학습과정도 염두에 두고 교

육하고 있지만 교재는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니다. 역사는 '이야기한

국사'를 읽고 그림이나 글로 정리하거나 현장답사를 간다. 영어는

비디오나 카세트 테잎으로 회화 위주의 공부를 하고, 한자는 시중교

재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데, 두 과목은 정훈이가 먼저 하겠다고

원해서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하고 있는 공부다. 요즘 정훈이는 사

회과목에서 사회단위의 개념을 익히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일산

을 지도로 찾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로 ‘일산도시만들

기’에 열중하고 있다. 수학은 정훈이가 싫어하는 과목이라 많이는

하지 않는다. 학습방법도 좀 다른 접근을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단

다. 이런 공부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설겆이, 청소, 쓰레기치우기 등

자기 책임분을 맡는 것도 교육과정 중 하나다.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아는 요즘 아이들과 다르게 정훈이는 인성이나 예절을 닦고 집안 구

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정훈이의 가정학교는 오전이면 끝난다. 오후엔 좋아하는 태권도를

배우러 가거나 피아노 연습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논다. 오전 학습

은 주로 엄마인 김선영 씨가 맡고 있다. 김광선 씨는 회사에 일주일

에 한 번씩 월차, 년차를 내서 과학과목을 맡고 있다. 그는 앞으로

직장을 정리하고 출판사업을 하면서 정훈이의 가정학습을 반 이상

책임지려고 한다.

가정학교는 무엇보다 부모의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

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많은 부담이 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정

학교를 하고 있는 이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또한

김광선 씨는 부부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한 쪽의 헌신만을 강요

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가정학교를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자기 아이

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가정학교모임’은 교

육통화시스템이라는 것을 마련해 상부상조하고 있다. 쉽게 말해 A

라는 사람이 가진 특기와 B라는 사람이 가진 특기를 서로의 아이에

게 교환해서 교육할 수 있다. 가정학교를 하는 아이들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사회성’이다. 정훈이의 경우 또래와 어울릴 기회를 갖

도록 시민운동단체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나 캠프 등에 자주 보내

고 있다. 하지만 김광선 씨는 가까운 주변에 같은 뜻을 가진 가정의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우리나라에선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법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

교장의 고발과 함께 행정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다. 1백만원 가량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가정학교를 하는 부모들은, 정상적이지 못한

학교교육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하고, 정부에 내고 있는 교육

세도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적·제도적 대응은 아직 못

하고 있다. 김광선 씨의 경우는 정훈이에게 가정학교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소견서를 학교에 제출, 교장의 동의하에 가정학교를 하고

있다. 가정학교의 이런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광선 씨는

‘방법은 찾으면 있다’고 이야기한다. 김씨는 정훈이가 원한다면

대학도 안 보낼 생각이다. 정훈이의 진로 선택은 정훈이 자신의 결

정에 달렸다.

우리사회에서 이제 막 시작된 가정학교운동은 공교육에 대한 극단

적 불신의 결과이자,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대한 최후의 통첩이다. 학

교 교육은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 당연히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변

하지 않으면, ‘학교’라는 단어가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김 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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