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들이여 일어나라”

7월 중순 방영을 시작하자마자 신선하고 현실감 있는 웃음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새 코너 ‘희극 여배우들’은 개콘 속 개그우먼들의 입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허안나는 “모 패션잡지의 화보 촬영을 할 때 아름다운 명품을 걸치고 2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잡지에 실린 사진은 마지막으로 찍은 이렇게 망가진 표정이더라”며 익살스런 표정연기를 선보였다. 박지선은 “난 못생기지 않았다. 러블리한 편”이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정경미는 “‘남자 친구 윤형빈이 11개월의 끈질긴 애정공세를 벌여 넘어갔는데, 곧 잘생긴 송병철, 허경환, 류근지 등이 후배로 들어왔다. 공개만 안 했더라면 난 지금쯤 허경환 여자가 돼 있을 것”이라는 말로 폭소를 이끌어 냈다. 막바지에는 ‘헬스걸’ 코너 이후 오히려 뚱뚱한 캐릭터를 뺏겨 개콘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는 이희경, 권미진이 출연했다. 박지선은 “돼지들의 전성시대가 올 줄 미리 알았더라면…”이라고 외치며 웃음을 줬다.

“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그들을 위한 개그가 없었다. 여자들이 잘하는 개그를 만들고 싶었다.”

최근 개그콘서트 서수민 PD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다. 서 PD가 수장을 맡은 2010년 말 이후 개콘에서 유독 여성 캐릭터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개그우먼 김영희가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외치던 ‘두분토론’부터 시작된 이런 변화는 다양한 소재와 캐릭터로 무장한 개그우먼들이 남성 중심의 장르라고 여겨지던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서 마음껏 활약하는 장을 만들었다.

몸 개그 중심의 개그 틀에서 벗어나 말로 웃기는 토크 개그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객석으로부터 즉각적이고 뜨거운 반응을 얻기 쉬운 바보 캐릭터나 몸 개그에 강한 남자 개그맨들은 스탠딩 코미디 무대에서 유리하다. 상대적으로 자신을 무너뜨리거나 망가지는 것이 쉽지 않았던 여성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을 중시하고, 생활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행어를 적극 활용하는 토크 개그가 유행하면서 개그우먼들이 설 자리가 많아진 것이다.

뛰어난 개그 콘셉트 이해력과 능청스런 표정연기를 자랑하는 박지선도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박지선은 2008년 ‘봉숭아학당’코너에서  여성 학자 역으로 나와 폭발적 호응을 얻는 등, 주로 자신의 외모를 대상화하고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그런데 요즘 인기를 끄는 ‘이 죽일 놈의 사랑’ 코너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한테 끊임없이 들이대는 추녀 캐릭터는 그대로지만, 잘생긴 상대 개그맨을 향해 ‘감히’ “못~쉥(생)겼다” “너한테 나 같은 여자? 과분해~”라고 큰소리치며 통쾌한 웃음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준다.

아쉽게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막을 내린 코너들도 있다. 장도연·허안나·박나래 등 신진 개그우먼이 주축이 돼 패션의 난해함을 웃음으로 풀어냈던 ‘패션 넘버4’나, 김혜선이 건강한 체격의 여러 남자를 압도하는 근육질의 스턴트우먼으로 나온 ‘최종병기 그녀’, 김경아·허민·홍나연 등 개그우먼이 각자 다른 캐릭터를 지닌 무서운 언니들로 나온 ‘호랭이 언니들’은 모두 최근 조기 종영됐다.

“개콘의 반 이상이 개그우먼이 되는 그날까지 개그우먼들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며 코너를 끝마치는 ‘희극 여배우들’ 속 대사가 현실이 될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