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기록 열람·등사권 없고 공판절차 통지도 못 받아
14시간 이론교육만으로는 피해자 돕기 어려워

 

정부는 지난해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법률조력인 제도를 포함한 장애인 성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정부는 지난해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법률조력인 제도를 포함한 장애인 성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법무부가 성폭력 2차 피해를 막고 피해자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기 위해 야심차게 마련한 ‘법률조력인 제도’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검사로부터 지정된 국선변호인(법률조력인)이 공판절차 통지도 받지 못하고, 재판장 허락 없이는 사건 기록을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지원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법률조력인 제도는 지난해 9월 개정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범죄 피해를 입은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을 위해 정부가 무료로 국선변호인을 지정해 피해 상담부터 자문, 고소장 작성과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참여하는 등 형사절차 전 과정에서 법률적 지원을 제공한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인 제도로는 처음 시행된 것으로 성폭력 범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는 2차 피해를 막고 법률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법률조력인이 실제로 피해자들을 적극 지원하기에는 제도상 허점이 많다. 가장 시급한 점은 법률조력인이 공판 절차조차 통보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법률조력인이자 직접 법률조력인 교육을 맡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다온)는 “법률조력인들은 공판 절차 과정조차 통보받지 못해 직접 사건을 검색해서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공판에 참여해도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아 방청석에 앉아 의견을 낸다”고 지적했다.

법률조력인의 사건기록 열람·등사권이 명문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배복주 장애여성 공감 대표는 “현재 재판장의 허락이 있어야만 조력인이 사건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혹시 재판장이 열람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부터 법률조력인으로 활동 중인 이미연 변호사(동네변호사 카페)는 “현재 일하는 곳은 의정부지만 검사로부터 법률조력인으로 지정받아 맡은 사건 중에는 피해자가 철원이나 파주에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김 변호사는 현재 의견서를 몇 번 냈고, 신뢰관계자와의 동석은 몇 시간 했고, 피해자와 상담을 몇 번 했는지 일일이 적어 검찰에 제출하고 이에 따라 보수를 받는 현 시스템도 ‘사건당 얼마 식’으로 정률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법률조력인 제도는 올 하반기 지원 대상이 장애인으로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관련 단체들은 현재 14시간에 불과한 이론 교육만으로는 지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제대로 지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배복주 대표는 “사실 현 제도를 들여다보면 피해자를 돕자는 것인지, 검사를 돕자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지적장애인을 직접 상담하고 사건을 접해보지 않으면 사실상 이들을 이해하고 피해자 입장에서 제대로 조력하기는 어렵다”며 “조력인 교육을 보다 실무 중심으로 바꾸고 나아가 조력인들이 관련 단체에서 실습을 해보는 방식도 당국에서 고려했으면 한다”고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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