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까마득한 거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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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허은숙 화백
성옥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았다. 오후 5시 3분이었다. 늦었다면 3분인데 성옥은 한 시간이나 늦은 기분이었다. 계단을 급히 뛰어 올라와 숨이 턱에 찼다. 지하철 3호선 1번 출구 앞에서 잠깐 숨을 삼켰다. 계단 밖으로 노란 햇살이 공기처럼 투명하게 퍼져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햇살, 어디서 놓친 듯한 햇살 같아서 성옥은 눈을 한껏 쪼프리고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에 파묻혀 아득하고 아득했다. 그래도 성옥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서였더라? 잡히지 않아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슬픔이었다. 압록강에서? 청진에서? 온성에서? 고등중학교 운동장에서? 양귀비 진액을 손가락으로 후비던 농촌에서? 그런 곳에선 햇살을 따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늘 맑고 밝고 투명했다.  

이때 누가 성옥의 팔짱을 와락 꼈다. 성옥은 부신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남혁이었다. 순간 성옥은 햇살의 고향을 기억해냈다. 몽골 사막에서였다. 반갑고 우울했다. 하지만 활짝 웃었다.

“나쁜 놈!”

성옥은 입안에서 버글거리는 웃음 사이로 남혁을 욕했다. 눈까지 흘겼다. 그러나 마음으론 남혁이, 니가 있어 다행이다, 말했다.

“누나 방금 무슨 생각 했나? 얼이 빠졌더라.”

성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뭔 엉뚱한 소린가? 이런 표정으로 남혁을 바라보았다.

“고향 생각했나?”

남혁이가 축 처진 목소리로 물었다. 성옥은 어느새 자신의 팔짱을 낀 남혁의 손목을 꼬집었다. 그래도 남혁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둘은 지하철 입구의 스타벅스 앞에 섰다. 들어갈래? 남혁이 눈짓했지만 성옥은 찻집 안이 시끄럽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혜교 누나가 늦는다. 전화해볼까?”

남혁이가 물었다. 성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혁이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검색하며 입으로는 엉뚱한 말을 했다.

“누나 더 이뻐졌네. 남조선 여자 다 됐다!”

순간 성옥이가 야멸치게 남혁의 팔을 떼어냈다. 그러나 남혁이가 입안에서 삼킨 말은 상상하지 못했다. 누나 요즘도 그 집 짓는다는 남조선 남자 만나나? 조심해라. 송충이는 송충이 끼리 살아야 한다, 는 말.

“안 받아?”

성옥이가 물었다. 남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컬러링이 두 번이나 돌아가고 저절로 끊겼다.

“요새 통화해 봤니?”

성옥이가 남혁에게 물었다. 비구름 같은 걱정이 얼굴에 끼었다. 15분이나 지났다.

“혜교 누나 정말 아픈가?”

남혁이 성옥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금방 남혁이가 누나! 소리쳤다. 혜교가 스타벅스 옆의 골목길에서 건너오고 있었다. 성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15분 동안 성옥이가 혜교에 대해 상상한 건 모두 고통과 불행에 대한 것뿐이었다. 나타난 것만으로도 고마워 왜 늦었느냐고 묻지도 못했다. 혜교의 가녀린 몸매는 언제나 그랬고 창백한 얼굴색도 늘 그랬다. 그런 몸에 연두와 보라의 자잘한 제비꽃이 무늬진 시폰의 원피스를 입어서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고혹감이 넘실거렸다.

혜교가 자고 일어나면 어지럽다고 말한 건 인사동의 개성만두집에서였다.

“병원에 가보지. 우리 쪽 사람들이 와서 차린 한의원도 여러 곳이란다.”

“우리 고향에서 온 어머니 친구분이 청진 인민병원에서 일하던 분이다. 아름아름으로 찾아오면 병에 맞는 약초도 주고 그런다. 가볼래?”

성옥이와 남혁이가 번갈아 말했다. 혜교는 대답하기도 힘들다는 듯 입가에 흐린 미소만 감돌았다.

“아는 사람이 대학병원 의사가 있어서 가봤다. 병이 없단다. 그런데 어지럽다. 자고 나면 어지러워서 일어나지 못한다.”

“누나! 시집가고 싶어서 그런 거다!” 남혁이가 말했다. 성옥은 말하는 남혁이 입에서 만두소가 흘러나올까 염려하며 남혁을 바라보았다.

“니는 그렇게 보이나?”

혜교가 남혁에게 물었다.

“고향….”

성옥이가 고향, 하고는 입을 딱 다물었다. 향수병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하면 안 되는 말 중의 하나가 고향 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정말 가고 싶어지면… 상상하기 싫고 또 두려웠다.

세 사람은 이 순간부터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만두전골의 마지막까지 모두 비우고 일어났다. 어디로 가지? 그들은 서로 말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곳, 우리가 우리 사투리로 말해도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 곳이 필요했다. 성옥은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배정받은 아파트에 들어가서 ‘섬’을 느꼈다는 탈북자의 수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거리로 나왔을 때 더 크고 더 단단한 섬을 느꼈다던 그 글을 떠올렸다.

셋은 남혁의 제안으로 길가의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통유리 밖으로 어두워지는 도시의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셋은 사이다를 시켰다. 얼음보숭이에 마음이 갔지만 생각은 거기에 미치지 않았다.

“난 여기서 성공할 거야!”

얼음 덩어리만 남은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남혁이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목소리는 크고 표정은 떠보였다. 하지만 성옥이와 혜교의 얼굴에선 똑같이 어떻게? 하는 표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 교수님이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들과 만나야 한대. 몇 번이나 죽을 고비 넘기고 여기 왔는데, 출세해야지. 억울해서도 그럴 거야!”

다시 남혁이가 힘주어 말했다.

“그래 봐.” 혜교가 모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성옥이가 혜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영화배우 뺨치는 얼굴에 무용으로 다져진 몸은 무슨 옷을 입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혜교의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곳은 술집뿐이었다.

혜교는 찻집에 오래 있지 못했다. 어지러워 앉아 있기 힘들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제발 건강해라. 우리가 가진 게 뭐가 있나.”

성옥이가 혜교를 배웅하며 말했다.

“이렇게 살아 뭐하니?”

혜교가 등 뒤의 성옥을 돌아보지도 않고 혼잣말을 했다. 순간 성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엊그제도 탈북자 청년이 19층 아파트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청진공과대학을 다녔다는 청년이었다. 무슨 이유에선가 자폐가 되어 집안에만 갇혀 지냈다고 했다. 두만강을 건넌 지 2년,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서울로 온 지 1년이 채 못 되었다고 했다. 들리는 소문은 정확하지 않은 게 보통이었다. 그 소식이 모두 사실이든 거짓이든 그런 소문을 들으면 성옥의 간장이 불로 지져지는 것 같았다. 그 쓰라리고 매운 충격은 오래오래 사그라지지 않았다.

혜교야 제발 오래오래 살자. 어느 날 갑자기 통일 되어 고향에 갈지 아니? 부모님 볼지 알아? 동무들 만날지 알아?

성옥은 숙연한 표정으로 남혁이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왔다.

“가자.”

앉지도 않고 퉁명스레 뱉었다. 남혁이 왜? 어이없어하며 성옥을 쳐다보았다. 성옥은 의자에 걸린 가방을 벗겨 어깨에 걸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남혁을 무심한 눈길로 비껴 보며 돌아섰다.

“누나.”

남혁이가 뒤따라 와서 성옥의 팔을 잡았다. 성옥은 흡사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남혁은 성옥의 팔을 놓지 않은 채 술이 마시고 싶다고 떼를 썼다. 두 사람은 비닐 벽을 둘둘 말아 올린 포장마차로 들어가 긴 의자에 앉았다. 디귿자로 놓인 의자는 모두 비어 있었다.

“난 누나하고 결혼할 거다!”

남혁이가 말했다. 소주 두 잔씩을 나눠 마신 뒤였다. 성옥은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가 누나 한번 만나겠단다. 집으로 함께 오란다.”

남혁이 말했다. 성옥은 남혁을 정색하고 바라보았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여자는 생각 못 하겠어.”

남혁이가 그윽한 목소리로 말했다. 몽골초원에서 죽었어도 되었다. 두만강에서 죽었어도 되었다. 나남의 철조망 아래서 죽었을 수도 있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매달린 기차 지붕 위에서도 굴러 떨어져 죽을 수 있었다. 이미 죽었다면 수없이 죽었을 것이었다. 남혁은 그렇게 자기 목숨을 비껴간 죽음들을 마음으로부터 하나씩 내던지고 있었다. 두 병째의 소주를 시키고 잔에 따라 마셔도 취기는 오지 않았다.

“누나가… 나를 살리… 었다.”

남혁이가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순간 성옥은 술잔 옆으로 떨어지는 남혁의 눈물을 보았다. 새끼야 제발 그러지 마. 성옥은 속으로 말했다. 울지 않으려고 머리를 들었다. 천막 위는 남루했다. 중년의 포장마차 주인은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성옥은 그 눈길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재빨리 계산을 했다. 남혁의 팔을 잡아당겼다. 남혁은 순순히 일어섰다. 말없이 인사동 네거리를 빠져나와 정류장에 섰다. 성옥은 혼자 아무 버스에나 올라탔다. 버스가 움직일 때 불현듯 후회되었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두만강도 건넜고 몽골사막에서도 얼어 죽지 않았다…고, 이를 악물고 생각하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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