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두 개의 문 앞에 놓이다
성폭력 재발 고리 차단하고 가해자 처벌… 2차피해
범죄임을 처음 항변한 사건

지난 6월 28일 ‘고려대 의대생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주심 전수안 대법관)은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해자들에게 징역 2년6월과 징역 1년6월의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다른 가해자는 2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해 형이 이미 확정돼 복역 중이다.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은 일반적 성폭력 피해의 양상에서 벗어난 진일보한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성폭력 사건의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비해 이 사건의 피해자는 용감하게 피해 사실을 드러냈고, 그로 인한 2차 피해와 법정 싸움도 이겨냈다. 피해자는 사건 다음날 학교의 양성평등센터 등을 통해 상담하고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으며 의대 본부와 총학생회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들의 처벌을 요청했다.

이 문제가 드러난 이후 고려대뿐 아니라 여성단체 등이 연대하는 사회적 지지 그룹이 단단하게 형성돼 피해자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피해자 비난에 갇히지 않고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버팀목 역할을 했다.

사건 발생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징계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고려대 의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해 학생들이 “다시 돌아올 친구니 잘해줘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측이 가해 학생들을 비호하고 있다는 우려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고려대 측은 지난해 9월 가해 학생 3명에게 출교 처분을 내렸다. 이 처분으로 피해자가 가해 학생들과 같은 학교를 다녀야 할 염려는 없게 됐다.

A씨는 다른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이 그렇듯 사건 이후 가해자 측의 합의 강요와 악의적인 소문 등의 2차 피해로 고통을 겪었다. 성폭력 사건의 피의자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 한 가해자와 그 어머니가 피해자의 이름이 명시되고 피해자의 인격과 평소 생활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내용의 사실 확인서를 같은 과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서명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동료 학생들에게 이 사건과 피해자가 드러났고 피해자의 이미지가 실추됐다. 피해자는 “학교에 갔을 때 애들이 인사를 해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왕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피해자일 뿐인데 나한테 왜 이럴까 싶었다”고 말한 바 있고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수면제를 먹는 등 치료를 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해당인들과 이 사건을 뒤에서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가해자 변호인을 명예훼손과 명예훼손 방조로 고소했다. 피해자가 성폭력 2차 피해는 용인될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점을 우리 사회 최초로 고소를 통해 항변한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혐의 부인, 2차 피해 등 이 사건에도 성폭력 사건의 양상이 고스란히 반복됐다. 그러나 피해자가 속한 공간에서 피해자의 용기를 이해하고 지지해 가해자를 정당하게 처벌하고 성폭력이 재발할 수 있는 고리를 차단할 수 있었다. 형사·사법절차에서 수사나 재판 관계자들의 성인지 감수성과 성폭력에 대한 이해 역시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앞에는 이제 망각과 기억이라는 두 개의 문이 놓여 있다. 사회가 성폭력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을 망각하느냐, 기억하고 다른 피해에도 적용할 것이냐의 선택이 향후 성폭력 근절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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