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인식 바꾸려면 가사노동자협약 비준해야

우리나라에는 30여만 명에 이르는 가사관리사, 간병사, 베이비시터 등 가사노동자들이 있다. 가사노동자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환자와 어르신, 아이를 돌보는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돌봄일자리는 핵가족·고령화 시대를 맞아 계속 늘고 있다. 가사노동자의 90% 이상은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를 책임져야 하는 중·장년 여성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개인(가정)에 고용되어 일하므로 행정감독이 어렵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1년 365일을 꼬박 일해도 휴가도 수당도 식대도 퇴직금도 없다. 일거리가 끊겨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일하다 다쳐도 본인들이 돈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6월 가사노동자와 관련해 189호 협약과 201호 권고를 채택했다. 189호 협약은 가사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근로기준법, 사회보험을 적용해 일반 노동자와 동일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도 이 협약 채택에 찬성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협약 비준에 대한 언급은 물론 국내 법제도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일언반구도 없는 상태다.

지난 8일 제101차 ILO 총회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식품노련, 국제가사노동자네트워크, 국제노총은 80명이 참석한 가운데 협약 채택 1주년 기념회의를 개최하고 6월 16일을 ‘국제 가사노동자의 날’로 선포했다.

가사노동자협약은 2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이를 ILO 사무국에 통보하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현재까지 비준국은 우루과이뿐이다. 지난해 협약 채택 이후 관련 국제조직들은 2012년 내 12개국 비준을 목표로 각국이 협약을 비준하도록 촉구하는 12-12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현재 코스타리카, 이집트, 에스토니아, 독일, 이탈리아, 라오스, 세르비아, 싱가포르, 튀니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짐바브웨가 협약을 관련 기관(의회 등)에 제출한 상태다.

우리나라는 청소나 빨래, 육아와 같은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사회다. 고령의 여성들이 하고 있는 사회적 노동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가사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이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고 그저 시간이 남아서 하는 ‘소일거리’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성 가사노동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안정적인 임금과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노동과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가사노동자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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