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소수 무시한 비민주 절차에 비난 쏟아져

헌정사상 첫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2010년 여성신문과의 퇴임 인터뷰에서 “여성 판사 임용률이 절반을 넘어섰기에 다수 여성 대법관 시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낙관했다. “사회 가치관의 최종 심판자이자 확정자”인 대법관의 특성상 여성이 절반인 사회에서 여성 대법관은 그 절반의 권리를 되찾아줄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달 10일 4명의 대법관이 퇴임하는 데 따른 대법원의 선택은 이와는 정반대다.

5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통령 제청에 따라 국회 동의 과정을 남겨놓고 있는 신임 대법관 후보 4명은 모두 남성 고위 법관 출신이다. 여성과 재야·진보 인사는 철저히 배제됐다. 이에 앞서 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13명의 대법관 후보 명단에서도 여성 후보는 전무해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로써 2004년 첫 여성 대법관 탄생 이후 올해 1월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배출돼 13명 대법관 중 2명의 여성 대법관을 유지하던 균형이 깨지게 됐다. 따라서 차한성 대법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2014년 3월까지 대법원은 현 박보영 대법관만으로 ‘여성 대법관 1인 체제’를 고수하게 된다.

대법원·대법관추천위의 이번 인선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사회문제와 구성원은 나날이 다양해져 가고 있는 데 반해 대법원은 서열·기수 중심의 낡은 관행을 견지함으로써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선에서의 비공개·비민주적 절차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대법원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 2명(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을 포함해 당연직·비당연직 인사 10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의 결정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 당초 시민단체, 변호사 단체, 법무부 등은 추천위에 50여 명의 후보를 추천했다.

이 중 여성은 5명. 1~2명의 여성 법조인이 명단에 포함되는 것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표결 결과 부결됐다는 후문이다. 문제가 된 것은 일시적인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추천위 일부에선 “양창수 대법관이나 이상훈 대법관의 경우를 미루어 보더라도 치명적인 결격사유는 아니다”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발표 직후 대법원 앞에서 참여연대와 함께 항의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들을 원점에서 놓고 재고해야 하며,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후보 추천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가정법률상담소의 한 관계자도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특히 가족법 분야에선 하급심 판례는 있지만 대법원의 성인지적 판단을 요하는 사안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이젠 대법관 후보와 추천위 구성에 있어 여성할당제나 남녀 동수 후보추천제 등 성인지적 대안을 촉구할 때다. 이번 대법원 선택에 대한 국회 동의 과정을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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