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우수 특성화고 학생 채용 시작
최근 채용을 마감한 삼성그룹의 고졸 공채 결과는 이슈가 됐다. 삼성그룹은 700명의 고졸 출신을 채용하며 능력이 출중한 사원은 바로 실무에 투입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채용된 학생들 중 670명이 상업고(420명), 공업고(220명), 마이스터고(30명) 등 특성화고 출신이었다. 올해 총 9100명의 고졸 출신 직원을 선발할 계획인 삼성그룹은 대학에 진학해야만 성공하는 학력 위주 사회 분위기 개선을 위해 그룹 차원의 고졸 공채를 지속할 방침이다.
그룹 사상 첫 고졸 공채를 실시하고 있는 SK그룹은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8개 계열사에 250명의 고졸 사원을 채용할 계획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학력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고졸 공채를 실시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SK그룹은 올해 채용할 7000명 중 30%를 고졸 출신으로 뽑는다. 이는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현대자동차그룹도 그룹 차원에서 올해 고졸 생산직 직원을 8년 만에 공개 채용 중이다. LG그룹도 올해 신규 채용 규모 1만5000명 중 5700명을 고졸 인력으로 채용하고 한화, 롯데 등의 대기업도 고졸 채용 계획을 갖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고졸 채용 바람이 거세다. 지난 4월 기업은행은 고졸 예비 행원 110명을 선발했다. 이 중 여성은 74명으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고졸 예비 행원들을 채용해보니 업무 능력도 떨어지지 않고 현장에서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됐지만 일정 기간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고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동안 여성 고졸 행원만 선발하던 기업은행은 21년 만에 뽑은 남성 고졸 예비 행원들을 위해 군복무 기간 중 기본급의 50%를 받을 수 있는 정책도 마련했다. 은행권에서 유일하게 정규직 고졸 직원을 채용하는 산업은행은 특성화고 졸업자가 교육을 원할 경우 교육 기회와 학비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기업들의 채용 물결이 일자 특성화고에서도 ‘선 취업 후 진학’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공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전정희(18)양은 “560여 명의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진학보다는 취업을 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김수연(18)양은 “대학 진학 대신 취업해 4년을 일하면 일도 능숙해지고 월급도 많이 받을 수 있어 바로 취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고졸 취업이 대입에 오히려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영신간호비즈니스고등학교 3학년 채수빈(18)양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는 것이 나중에 대학에 가기 훨씬 유리하다”며 “기업들이 사무직 직렬을 좀 더 많이 뽑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노사인력팀장은 “이전에는 전문계고, 특성화고 학생들 중 우수한 학생들이 취업보다 대학에 가려는 분위기가 우세했는데 대기업들이 채용문을 여니 우수 인재들이 취업시장에 나오게 됐다”며 “지금 취업하는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기업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고졸 채용에 아직 큰 변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권으로 취업을 원하는 일산국제컨벤션고등학교 3학년 김보미(18)양은 “특성화고 채용이 늘었다고 해도 아직은 우수한 소수만이 받는 혜택”이라고 지적했다. 허진우 영신간호비즈니스고등학교 취업지도부장도 “대기업의 고졸 채용이 늘었다지만 상담직 또는 생산직 위주고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많은 고졸 채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하며 “고졸 출신 학생들의 채용 증가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회사를 오래 다니려면 기업들이 직원들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